분류없음2015.05.29 22:44

 지난 주말 인천 송도 도심 서킷에서 열린 '더 브릴리언트 모터 페스티벌'(KSF 2차전)에서 프로 선수의 옆자리에서 서킷을 간접 체험하는 '택시 타임'에 참가했습니다.

 

행운인지 불행인지 제가 탄 차의 담당 선수는 '국가대표 드리프터' 김상진 선수.

 

여덟 바퀴를 돌았는데 (개인적으로 우주선을 타본 적은 없지만) 과장 덧붙여 우주선급 중력 체험을 했습니다. 토할 뻔한 걸 겨우 참았다는ㅠㅠ 

 

인상적인 체험이라 토하기 직전까지의 영상 공유합니다.

 

 

 

 

 

 

 

 

신고
Posted by 김형욱
일기장2014.09.29 02:58

나 있을 때 한번 와.’

 

올 봄 반년 동안 영국에 파견근무 중인 친구가 저를 초청했습니다. 저와 친구, 영국에 있는 친구 세 명은 합심했죠. 카톡 채팅방에서 계획을 짰고, 결국 지난 추석 징검다리 연휴를 이용해 여행을 다녀왔어요.

 

솔직히 좀 힘들긴 했어요. 역시 여행은 사서 고생…. 출장을 빼면 태어나서 가장 먼, 가장 오랜 여정이었어요. 발다리가 팅팅 부었다는….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즐겁고 유익한 기억. 개인적인 고민도, 일도 잠시 잊었죠. 이를 기념하고 나누기 위해 블로그에 체험기를 연재해볼까 해요.

 비행기 오르는 중. 외국 항공사 비행기는 어느 공항이든 찬밥 신세라 공항에서 바로 못타고 이렇게 버스 타고 움직여서 타야 한다는.

늘 그렇지만 10시간이 넘는 비행기 여행은 힘들어요. 다리도 퉁퉁 붓고..

 

유럽까지 가려면 오가는 데 하루 24시간은 꼬박 걸리죠. 비행기값도 100만원이 훌쩍 넘고. 가능한 한 최대한 길게 잡아야 했어요. 그러나 직장인이 길게 쉬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 저흰 추석 연휴를 이용했죠.

 

추석 연휴가 낀 9 5~13일. 두 번의 주말(4)과 추석 3일에 (여름)휴가 3일을 묶어 열흘의 연휴를 만들었고 그중 9일 동안 다녀왔죠.

 

싸고 좋은 비행기표를 찾는게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웹서칭 어마어마하게 했죠. 알고는 있었지만 비행기표는 정가가 없다는 걸 새삼 실감.

 

국내 항공사 직항편은 너무 비싸서 엄두를 못내고, 외국계 항공사 경유편으로 눈을 돌렸죠. 그런데 같은 경유라도 공항에서 몇 시간씩 대기하는 건 죽음이죠. 최대한 싸되 경유시간 너무 길지 않은 걸로.

 

단체 여행은 사전 예매·일정조율이 생명

  

항공권은 예매가 빠를수록 싸다네요. 저희도 한달 전쯤 알아봤는데 이미 표가 동난 것도 있더라고요. 여름 휴가시즌은 지났지만 추석 연휴인 까닭에 저희처럼 가는 수요도 꽤 있었을 듯.

 

인터넷을 뒤진 결과 142만원짜리 아에로플로트(AEROPLOT, 러시아항공사) 왕복 항공권으로 결정! 가는데 16시간15, 오는데 13시간35. 모스크바 공항에서의 경유시간 각각 3시간10분과 1시간45. 이정도면 괜찮다 싶었죠. 더 싼 것도 있었는데 두 번 경유, 경유시간 6시간.. 뭐 이런 식이어서 포기.

 

결과적으론 운도 따랐어요. 올 때 모스크바에서 환승하는데 러시아항공사 일정에 빵꾸가 났는지 왜인지는 몰라도 대한항공을 타고 왔어요. 자리도 좋았고.

 

그런데 환승 공항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할 것 같아요. 갈 때 3시간10분 환승대기한 모스크바공항 안은 전체가 금연이더라고요. 저같은 애연가에게는 고문ㅠㅠ 그래서 포도주 한병 깠다는.. 원래는 러시아=보드카를 생각했는데 공항 안엔 보드카가 없더라고요. 못 찾은 건지.

 

대한항공 기내식. 아래 에어로플로트 기내식 사진도 올렸지만.. 기내식은 역시 고추장 담뿍 비빔밥이 최고!러시아 항공사 아에로플로트!

 

단체 여행은 사전 예매와 동선·일정 조율이 생명이더군요. 서로 가고 싶은 곳이나 하고 싶은 취향이 다르니까. 저희도 영국에 사는 친구를 영국에서 보자는 게 원래 목적이였는데 영국이 싫다는 친구가 있어 이탈리아가 추가됐고요, 이탈리아에서도 남부 나폴리(아말피)파와 북부 피렌체파가 갈려서 절충해야 했죠.

 

치열한 조율 끝에 영국 2(런던 외곽 1, 런던 시내 1), 이탈리아 4(피렌체 1, 나폴리~폼페이~아말피 2, 로마 1)을 더한 6일 여정이 확정됐죠. 세부 일정도 다 짰어요.

 

참고로 통상적인 여정은 아니었어요. 북유럽 영국하고 남유럽 이탈리아만 묶어 가는 일도 많지 않거니와 이탈리아 안에서도 북부인 피렌체와 남부인 나폴리를 찍은 것도 통상적이진 않았죠.

 

이미 지난 다음 얘기지만, 이탈리아 북부라면 베네치아-피렌체-로마, 거기에 패션의 도시 밀라노를 끼워서 한 코스가 되겠고, 남부 위주라면 시칠리아 같은 섬과 나폴리(피렌체)를 한번에 둘러보면 좋을 것 같아요. 물론 취향 따라 조율하는 거고요.

 

저를 뺀 2명이 여행 마니아다보니 준비는 놀라울 정도로 착착 진행되더라고요. 출발 전 돈 들어가는 건 이미 대부분 예매를 마치고 몸만 훌쩍~.

 

저는 예매 문화가 익숙치 않았던 탓에 이역만리 땅 생면부지 사업자에 한달 뒤에나 이용할 서비스의 요금을 미리 지불한다는 게 당최 어렵더라고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예매 안했으면 아예 못했을 것도 꽤 있었어요. 무작정 떠나는 여행도 좋지만, 길지 않은 휴가, 시행착오를 줄이려면 이것저것 예매해 가는 게 좋겠더라고요.

 

‘68일 유럽 여행비용은 350만원

 

6박8일 유럽 여행비용은 총 350만원 들었습니다. 호화판 여행은 아니었지만, 아주 아끼려기보다는 적당히 쓸 생각이었다는 점 참고.

 

큰 단위의 이동에 180만원 정도 들었습니다. 인천에서의 왕복 항공권(142만원)에 런던(영국)~피렌체(이탈리아) 편도 항공권 36만원, 피렌체~나폴리(이탈리아) 기차표가 약 75000원 등등….

 

이탈리아에서의 4일 숙박비는 총 33만원. 영국은 친구네 집이 있었으니 공짜였고, 피렌체 한국인 민박이랑 이탈리아의 작은 민박집 1박이 130~140유로씩( 18만원, 1인당 6만원), 아말피 인근의 글램핑장 1박이 약 31만원(1인당 10만원)씩 들었죠.

 

나머지 137만원은 이래저래 썼어요. 뮤지컬이다 재즈다 공연 보는데 20만원, 렌터카 4일 빌리는데 50만원(1인당 17만원), 식비랑 소소한 이동에 하루 10만원씩 총 60여만원 정도 쓴 것 같아요. 이렇게 100만원 정도 나갔고요,

 

영국 카지노에서 블랙잭하다가 100파운드( 17만원) 정도 잃었고, 이탈리아에서 100유로( 13만원)짜리 지폐 하나 잃어버리고(도난 아닌 단순 분실) 하느라 총 30만원 추가로 나가고….

 

다른 친구들도 저랑 비슷하게 쓴 듯해요. 친구들은 카지노도 안 했고 돈도 안 잊어버렸지만 이래저래 선물 샀거든요. 전 해외출장이 많기에 선물·기념품은 생략.

 

비율로 보면 이동하는데 들어가는 돈이 60%로 가장 많고, 숙식에 약 20%, 관광과 여흥에 들어가는 돈이 20% 정도 들었네요. 다시 한번 느끼지만 이동할 때 가장 목돈이 들어가므로, 기왕 멀리 여행을 간다면 거기에 최대한 오래 머무는 게 이득일 듯합니다.

 

환전 영수증. 담번에 비슷한 규모의 여행을 한다면 좀더 적게 환전!

 

참고로 환전은 300파운드(50만원), 730유로(100만원)를 더해 총 150만원어치 해갔는데, 사전에 예매를 많이 해 놔서 300유로(40만원) 남았네요. 외화 사고팔 때 수수료가 3~4%는 되니까 최대한 딱 맞춰 가는 게 좋겠죠? 비자카드도 하나 만들어간 덕분에 현금은 더더욱 쓸 일이 없더군요. 비자카드나 마스터카드 둘 중 하나 있으면 웬만한 곳은 카드결제하는데 불편함이 없을 듯해요.

 

더 자세한 여행 이야기와 사진은 1~2일에 한 번씩 총 10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입니다. 유럽여행 갈 계획이 있는 분은 참고하시길!

 

러시아항공 아에로플로트 기내식 모음

 

러시아항공 아에로플로트 기내식 모음

 

러시아항공 아에로플로트 기내식 모음

 

 

 

대한항공의 아침 기내식 오믈렛

 

신고
Posted by 김형욱
책을 읽고2014.09.16 05:16

조승우, 김혜수, 백윤식이 주연한 타짜 1편에 비해 중량감이 떨어져서일까. 타짜2(타짜 -신의 손)의 평가가 별로 안 좋다는 얘길 들었다. 물론 지금까지의 기록으로는 빅뱅의 탑, 신세경을 위 쟁쟁한 배우와 견주기는 어렵다. 아무래도 가볍다. <써니> <과속스캔들> 같은 비교적 가벼운 흥행영화를 만들어 온 강형철 감독도 웬지 중량감이 떨어져 보인다.

 

그런데 김세영, 허영만 원작의 타짜 1~4부를 못해도 100번 이상, 타짜의 모티브가 된 48+1까지 본 허영만 마니아로써, 결과적으로 타짜2가 원작에 훨씬 충실해 보인다. 그리고 더 재밌다.

 

1편을 보고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재미없었단 건 아니다. 다만, 원작과 느낌이 달랐다. 한국전쟁 직후,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 1편의 시대적 배경은 둘째치고라도, 캐릭터의 성격도 달랐다. 원작과 같으란 법은 없지만, 만화 속 캐릭터보다는 조승우, 김혜수, 백윤식이란 배우 그 자체의 느낌이 너무 강했다. 원작에서 순박했던 주인공 고니는 너무 극단적으로 타락했고, 타락한 평경장은 너무 도덕적으로 비춰졌다. 닳고 닳은 여편네 정마담도 김혜수라는 옷을 입고 너무 세련된 사기꾼으로 변했다. 물론 그 나름대로 재미있었지만, 원작을 어떻게 구현했을까 기대한 만화 마니아로썬 아쉬웠다.

 

크라이막스는 만화 타짜 1부에서 가장 멋진 장면, 고니가 동료 고광렬의 죽음, 아귀와의 승리 후 도박을 끊고 개과천선한다는 내용이 영화에서는 빠졌다. 오히려 고니는 타락할대로 타락한 채 죽어버린다. (수정: 죽진 않죠. 해외도피해서 카지노를 전전하는 뉘앙스로 끝나죠ㅎ)

 

2편은 그런 아쉬움을 날려준 좋은 작품인 거 같다. 최소한 감독과 배우 모두 '만화 원작에 충실해야지'란 생각에 사로잡힌 나처럼 만화를 100번 이상 보고, 그 만화에 동화된 느낌이 난다. 영화로써 호불호가 갈릴 순 있겠지만, 나로썬 이런 노력이 엿보이는 2편에 더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역시 70~80년대라는 만화 속 시대적 배경은 90년대부터 2000년대로 다르다. 주인공 함대길이 뼛속까지 타짜로 거듭나게 된 감옥행이 없다는 것도 다르다. 그런데 그 느낌에는 충실하다. 빠르게 지나가는 함대길과 우사장(이하늬)의 베드 신은 마치 만화 속에서 화투의 그림을 형상화 한 정사 씬과 오버랩되고, 광숙이(신세경)와의 첫만남, 사랑한 끝에 칼로 손등을 찍는 장면 등은 만화와 '따로 또 같이' 비슷한 느낌을 구현한다. 가장 큰 줄거리상의 변화, 감옥에 갔다오지 않은 부분도 광숙이 오빠 광철이(김인권)의 감옥에서의 생활로 얼추 틀을 맞춘다. 만화를 보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이미 만화를 본 상태에서 영화화를 즐기려는 사람에게는 꽤나 자연스럽다.

 

영화평론가들이 함대길의 연기가 가볍다고 하더라. 그런데 함대길이란 캐릭터는 원래 가볍다. 아니, 허영만의 만화 그 자체는 무겁지 않다. 해학이 넘친다. 그 해학 속에 '심쿵'하는 깊이가 담겨 있다. 타짜1편의 진지함은 마치 이현세의 만화를 보는 듯했다. 허영만에게는 오히려 이런 유쾌함이 더 어울린다. 어떻게 영화 속 캐릭터 하나하나가 이렇게 만화 속 캐릭터를 빼다 닮았는지.. 감독, 스텝, 배우 모두 고생했다.

 

'마른 오징어에서 엑기스를 짜내는' 똥식이 곽도원의 징글징글함도 영화 속에 잘 묻어난다. 영화에서 기술적으로 구현하기 어려운 것 빼곤, 만화를 그대로 살려냈다. 배우의 무게감을 훌훌 벗어던지고 오롯이 원작을 바라본 느낌이랄까. 아니, 배우에 무게감이 떨어지니 오롯이 원작을 바라본 걸까.

 

만화를 안 본 사람이 이 영화를 보면 어떤 느낌일까. 나 같이 더 좋은 느낌을 받으려면 원작을 한번 보고 영화를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그나저나 만화적인 요소가 가득한 3편은 또 어떤 식으로 구현될까. 그리고 너무 스펙타클해서 도저히 2시간짜리 영화로 담는 게 불가능해 보이는 4편은 어떤 식으로 표현될까. 영화화하려면 상당한 각색이 필요할텐데.. 한껏 기대를 해본다. 그나저나 만화가 허영만은 역시 최고의 이야기꾼이다.

신고
Posted by 김형욱
책을 읽고2014.07.28 06:00

-서중석 성대 사학과 교수(전 동아일보 기자) 2005년(2013년 개정)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출판

 

 

좋은 책이다. 누구나 한번쯤 꼭 읽었으면 좋겠다. 고등학교 역사는 근거도 불분명한 고조선부터 암울했던 조선시대 말기까지만 제대로 다룬다. 이후부터는 이해관계가 너무 엇갈려 청소년에 교육하기가, 교육할 내용을 만들기가 너무 부담스럽다. 유야무야 넘어간다. 아니, 왜곡한다. 그러나,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우리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살아 있는 역사는 바로 지금, 그리고 지금이 있게 된 10~20년 전 얘기다. 그 얘기를 비교적 중립적으로 담으려 했다. 솔직히 약간 좌편향이라는 지적을 받아도 어쩔 수 없지만, 약자 편을 좀 들었다고 책할 건 아니지 않은가.

 

일단 정치 위주로 보자. 1945년 8월 15일. 조선은 독립한다. 대부분은 독립한 줄도 몰랐다. 다음 날인 16일이 되서야 거리로 나와서 만세를 외쳤다. 그러나 이어진 것은 혼돈이었다. 김구, 안창호, 김일성, 여운형, 박헌영, 그리고 초대 대통령이 된 이승만까지.. 수십여 명의 정치인이 수십여 정당으로 헤쳐모인다. 미군정과 소련, 두 곳의 이해관계까지 얽히며 꼬이고 꼬인다.

 

결국 공산주의 계열은 북으로, 자유주의 계열은 남으로 헤쳐모인다. 이 가운데 애매한 분들, 이념이 아니라 어떻게든 남북을 통합해야 한다는 분들은 다 죽거나 정치 무대에서 사라졌다.

 

이승만은 살아남았다. 능력이라고 해도 좋다. 숙청의 두려움에 떨던 친일파와 손잡고 당대 최고 권력인 경찰 조직을 장악했고, 왜곡된 '반탁투쟁'으로 대중의 지지기반을 확보했다. 1948년 남한만의 단독 정부를 수립했다. 미국 생활을 바탕으로 미국과의 '밀당'도 능수능란하게 했다. 키워드는 '반공'. 정치깡패도 잘 활용했다. 그리고 1960년 4월 혁명으로 물러날 때까지 10년 동안 독재한다.

 

그 10년 동안 참 많은 죄를 졌다. 1950년 한국전쟁 땐 가장 먼저 대전으로 도망쳐서 서울 시민에게 "안심하라"고 방송했다. 그리고 서울을 수복하자 남은 사람을 북한에 동원됐다며 무참히 죽였다. 제주에서, 전라도에서, 여수에서 너무 많은 사람을 죽였다. 단위가 수만이다. 일본보다 더하다. 그리고 한국 역사에 '일본이든 어디든 권력에 붙는 자는 계속 권력을 누린다'는 교훈마저 남겼다. 쓰레기.

 

4월 혁명으로 그는 미국으로 도망쳤다. 하야했다. 봄이 오는 듯했다. 그러나 물러나도 정권은 이승만파인 허정 과도정부에 있었다. 그나마도 1년밖에 못 갔다. 박정희를 주축으로 전두환, 김종필, 노태우 등등의 군인 세력은 1961년 5월 16일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고, 1963년 박정희를 대통령으로 '옹립'했다. 그리고 1979년 10월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암살될 때까지 19년 동안 해먹었다. 정적은 암살.납치되고 온간 편법과 개헌을 동원해 정권을 유지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박정희의 이력은 멋지다. 만주 일본군 출신이다. 독립 이후 일본군으로 국군을 만들려고 한 미국 군사훈련학교에 편입됐다. 한국전쟁 전에는 남로당에 종사한 이력도 있다. 이 과거는 그가 평생을 '빨갱이' 혐오로 산 이유이기도 하다. 어쨌든 그 시대를 살아남았고 독재자까지 됐다. 그런데 너무 오래 하려고 해서 탈이 났다.

 

그가 죽으면 끝난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1979년 12월 12일 이번엔 쿠데타 후배 전두환이 일어났다. 지긋지긋하다. 1980년 대통령에 6월 항쟁이 있던 1987년까지 7년을 더 해먹는다. 1988~1992년엔 역시 쿠데타 후배 노태우가 당선됐지만, 이때부턴 표명상으론 제대로 선거해서 뽑았다. 50~60년대처럼 학살, 암살은 없었지만 지금이라면 문제가 될 많은 범법행위-가령 국정원의 정치개입-가 그땐 일상이었다.

 

이후부터는 군부세력과 손잡은 민주당 김영삼, 다음은 박정희 때 암살 고초까지 겪은 김대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무현이 대통령이 됐고, 박정희의 향수를 되새긴 이명박과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그 정권을 이어받고 있다.

 

물론 써 놓은 것처럼 우울한 일만 있는 것은, 이 책이 이런 한탄만 늘어놓는 것은 아니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든, 국가를 위해서든, 모두가 노력한다. 세계 유래없이 눈부신 경제적 발전을 이뤘고, 민주화에도 성공했다. 최소한 지금은 국민이 별 이유 없이 끌려가서 두드려맞는 시대가 아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그냥 이뤄진 게 아니라는 건 알아야 한다. 많은 희생과 노력이 있었다. 그리고 대중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권력을 위해서 권력을 잡으려는 정치인은 널리고 널려 있다. 바로 전 과거를 알아야 하는 이유다.

 

이 책. 정치 얘기 위주지만 그 비중은 60% 정도다. 나머지 40%는 생활, 문화상 등 가십 얘기를 다룬다. 사진과 함께. 깡패 얘기, 미니스커트 얘기도 흥미진진하다. 3개만 언급했지만 역사 상식에도 도움이 될 만한 많은 에피소드가 있다. 서평은 두서없이 썼지만, 이 책은 훨씬 잘 정리돼 있다. 한번 읽기를 권한다.

 

<상식 단어 정리>

 

#반탁투쟁=일본으로부터 해방된 1946년 미·소 양국이 남북한에 들어오자 대중은 다시 일제시대처럼 '신탁통치'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했고, 이는 반탁투쟁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를 영구히 점유할 의도, 의지가 없었고, 이는 이승만 대통령과 손잡은 친일세력이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다소 정략적으로 사용됐다.

 

#이정재, 김두한, 유지광, 임화수, 시라소니(이성순)=1950~1960년대를 풍미한 대표적인 정치깡패. 이중 김두한은 국회의원까지 했다. 국회의사당 안에서의 똥물 투척 사건으로 유명하다. 정치인이 지하세계와 연이 닿아 있어야 한다는 말은 이 시대를 배경으로 나온 말이다. 참 의문사가 많던 시대였다. 이들은 1961년 박정희 대통령의 쿠데타 이후 완전히 몰락했다. 물론 중앙정보부라는 게 이를 대체한 듯하지만..

 

#6월항쟁=공식적인 쿠테타 군부 정권의 마지막인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임을 막은 사건. 1987년 초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이후 전국의 학생, 교수, 노동자가 들고 일어났고, 1980년 광주항쟁 때의 학살을 경험한 전 전 대통령은 결국 정권을 '포기'했다. 진보와 보수가 나뉘어 그 의미를 축소하기도 하고 확대하기도 하지만 역사적으로 굉장한 사건이다. 반만년 한반도 역사에서 처음으로 대중이 권력을 뒤집은 것이다. 아, 물론 1960년 이승만을 몰아낸 4월 혁명도 있지만 이 기쁨은 이듬해 5.16 쿠데타로 너무 빨리 끝나버렸다.

신고
Posted by 김형욱
자동차 이야기2014.07.26 06:00

기아자동차가 지난달 초 여태껏 없던 이색 대회를 시작했습니다. 최고의 쏘울 튜닝카를 뽑는다는 ‘튜닝킹코리아 쏘울 커스터마이징컵’인데요. 꽤 쟁쟁한 실력을 갖춘 튜닝 회사 3곳이 참여합니다. 장커스텀, 피코사운드, 덱스크루. 지난 6월부터 튜닝을 시작한 이들의 작업은 쏘울 브랜드 사이트(http://soul.kia.com)에 중계되고, 오는 8월 2일엔 안산 스피드웨이에서 오프라인 투표도 합니다. 물론 온라인 투표(4~10일)도 있죠.

기아자동차는 내달 초까지 최고의 쏘울 튜닝카를 뽑는 '2014 튜닝킹 코리아 쏘울 커스터마이징컵'을 연다. 여성 프로레이서 셀린권(가운데)가 MC를 맡고,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덱스크루, 장커스텀, 피코사운드 팀이 참여한다. 기아차 제공

꽤 본격적입니다. 일회성 이벤트는 아닌 듯합니다. ‘쏘울 커스터마이징 컵’이란 이름 자체가 이미 2편, 3편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디자인을 내세운 이벤트. 얼핏 보면 이전과 비슷해 보입니다. 디자인 기아란 말은 우리에게도 친숙합니다. 기아차는 2007년부터 꾸준히 각종 매체를 통해 ‘DESIGN KIA’를 알려 왔으니까요. 실제로 기아차는 세련된 자동차 디자인 덕을 톡톡히 봤죠. 그런데 이번 행사는 조금 다릅니다. 한발 더 나간 듯합니다. 자동차를 디자인하는 걸 넘어 문화를 디자인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입니다. 디자인 기아 2.0이라고나 할까요.

 

◇기아차, 자동차업계 '히딩크' 영입하다

 

디자인 기아.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8년 전,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정의선 당시 기아차 사장(현 현대차 부회장)은 그해 9월 삼고초려 끝에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꼽히던 피터 슈라이어(Peter Schreyer)를 디자인 총괄담당(CDO) 부사장으로 영입했습니다. 그해 파리모터쇼에서 ‘디자인 경영’을 선포하며 이를 공식 발표했죠.

 

피터 슈라이어 사장

 

정의선 부회장

 

피터 슈라이어의 기아차 합류는 큰 화제였습니다. 피터 슈라이어는 당시 BMW의 크리스 뱅글(Chris Bangle), 아우디의 월터 드 실바(Walter De Silva)와 함께 유럽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꼽혔습니다. 아우디 TT, A6로 아우디의 변화를 이끌었고,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 가야르도 디자인 작업에도 참여했습니다. 세계 정상급 디자이너가 자동차 산업의 변방인 한국, 기아차에 온 것입니다. 지금이야 현대기아차가 세계 5대 자동차 회사이고 BMW 같은 독일 고급 차 회사에도 한국인 디자이너가 활약하는 시대라지만, 불과 얼마 전 이야기입니다. 아직도 갈 길이 멀고요. 슈라이어는 당시 기아차라는 아직 새하얀 캔버스에 얼굴, 표정을 그리고 싶었다고 합니다.

 

2008년 6월 당시 기아차 디자인 총괄이던 피터 슈라이어 부사장이 미국 디자인센터 개관식에서 연설하는 모습. 기아차 제공

 

피터 슈라이어의 대표작 아우디 TT

큰 모험이었지만, 그만큼 큰 성공을 일궈냈습니다. 2008년 6월 로체 이노베이션(현 K5)을 시작으로 포르테(K3), 쏘울 등에 새 디자인이 적용됐고, 연이어 성공했습니다. 슈라이어가 합류한 지 2년도 안 되는 짧은 시기였고 신모델 모두 개발 초기부터 그가 참여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호랑이 코(타이거 노즈)라 불리는 라디에이터 그릴은 기아차를 상징하는 ‘패밀리 룩’이 됐고, 소비자의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기아차는 이후 180도 달라졌습니다. 2006~2007년 적자이던 기아차는 새 디자인의 신모델에 힘입어 2008년 3085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흑자로 돌아섰습니다. 이후로도 2009년(1조1445억원), 2010년(2조4900억원) 등 해마다 사상 최대 실적을 갈아치웠습니다. 기아차는 지난해도 3조1771억원의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했습니다. 때마침 국외 공장을 확대하며 2006년 126만대이던 연간 글로벌 판매량도 지난해 283만대로 두 배 이상 늘었죠.

 

2008년 출시한 로체 이노베이션. '호랑이 코'로 불리는 기아자동차의 패밀리 룩 6각형의 라디에이터 그릴이 처음 적용됐다. 기아차 제공

 

디자인 기아도 진화했습니다. 2009년 K5를 시작으로 K7, K3, K9까지 이른바 K시리즈가 탄생했습니다. 디자인에 정체성을 심은 후 이름에도 기아차의 정체성을 담은 거죠. 특히 기아차 디자인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대형 세단 K9은 오피러스 이후 10년 만에 선보이는 기아차의 플래그십(flagship) 모델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죠. 올해 미국, 유럽 등 선진 시장에 처음 선보이는데 그 반응이 어떨지 궁금합니다.

 

 

피터 슈라이어가 K9의 디자인을 스케치하는 모습. 기아차 제공

 

슈라이어가 한 일은 단순하면서도 혁신적입니다. 위계질서를 따지는 대신 경영진부터 신참 디자이너까지 꾸준히 일대일로 소통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생각을 모아 기아차의 방향성을 단순명쾌하게 규정했습니다. 이는 2007년 4월 발표한 ‘직선의 단순화(The simplicity of the straight line)’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죠. 자동차 디자인을 직선적이고 단순화하겠다는 뜻도 있지만, 이보단 생각 자체를 직선적이고 단순화하겠다는 의미가 더 큽니다.

 

당연히 좋은 얘기죠. 그러나 말처럼 쉽진 않았을 겁니다. 자동차는 1개 모델에만 수천 명의 사람이 함께 만드는 유기체입니다. 각 부문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다보면 이도 저도 아닌 작품이 나오기 십상입니다. 예를 들어 초기 디자인이 나오면 엔지니어 부문에선 성능을 이유 이를 바꾸려 합니다. 부품 부문에선 디자인에 맞는 부품을 만들기 어렵다며 난감해 합니다. 신차를 개발할 때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는 매일 싸우느라 사이가 나빠진다는 말도 있죠. 일본 자동차 회사의 디자인에 진보가 더딘 건 전통적으로 엔지니어가 강하기 때문이라고 하고요.

 

슈라이어를 영입한 디자인 기아는 이를 바꿨습니다. 물론 슈라이어 혼자 해낸 건 아닙니다. 슈라이어가 한 것은 현재 세계적으로 인정받던 한국 디자이너의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도운 것입니다. 물론 정의선 당시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전폭적인 지지가 없었다면 어려웠겠죠. 기아차는 1998년 현대차에 인수된 이래 같은 엔진, 같은 변속기를 쓰는 현대차와 차별화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이 변화의 핵심은 디자인이었고, 결국 성공했죠.

 

외국 ‘감독’을 영입해 전권을 줬고 그럼으로써 이미 갖고 있던 역량을 극대화한 것. 기아차의 슈라이어 영입과 대한민국 축가대표 팀의 거스 히딩크 영입은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왼쪽부터)정의선 부회장과 피터 슈라이어 사장이 '2009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장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현대차그룹 제공

 

 

◇독일 레드닷 디자인상을 받은 첫 한국차는

 

세계 3대 디자인상이란 게 있습니다. 독일 레드닷 디자인상과 iF 디자인상, 미국 IDEA 디자인상입니다. 이중 레드닷 디자인상은 독일 노르트하임 베스트펠란 디자인센터가 1955년부터 매년 열고 있는 세계 최대 디자인 공모전입니다.

 

여기서 처음 상을 받은 한국차는 뭘까요. 네, 앞서 튜닝카 선발 대회 이야기에서 소개했던 쏘울입니다. 2008년 선보인 1세대 쏘울은 한국차 최초로 레드닷 디자인상 자동차 분야에서 장려상(Honorable Mention)을 받았습니다. 지난해 출시한 2세대 쏘울은 올 초 세계 3대 디자인상을 석권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기도 했죠.

 

1세대 쏘울

 

2세대 쏘울

 

전기차 쏘울EV

 

쏘울은 시작이었습니다. 디자인 기아는 외국에서도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유럽전략모델 벤가는 한국 양산차 최초로 iF 디자인상을 받았고, 이듬해 레드닷 디자인상도 받았습니다. 특히 K5는 2011년 레드닷 디자인상 수송 디자인 분야 최우수상(Best of the Best)에 오르는 등 매년 호평이 이어졌습니다. 기아차는 2008년 첫 수상 이후 매년 상을 받지 않은 해가 없었죠. 자연스레 해외에서의 위상도 달라졌죠.

 

기아차가 외국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1975년 브리사 10대를 카타르에 수출한 이후 꾸준히 자동차 수출을 시도했지만 많진 않았죠. 1986년까지 1만대를 넘은 적이 없으니까요. 1993년 연간 수출 10만대를 넘겨 2007년 국외 공장을 포함한 외국판매가 100만대를 넘었지만 여전히 저가 소형차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현지에서 혹평이나 우스갯감이 되더라도 별수 없었죠. 일본, 미국 경쟁차와도 진검승부를 벌일 수 있게 된 것은 2000년대 말부터입니다. 지난해 국외판매량은 국내수출 114만대, 외국공장 123만대 등 237만대입니다. 아직 완성 단계라고 할 순 없지만 ‘제값 받기’도 한창이죠.

 

이렇게 변하기까지 디자인 부문에서의 호평은 현지에서의 이미지를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물론 기술적인 발전과 현지공장 확대 노력도 있었지만 이것만으로는 고객층을 확보할 수 없었죠. 쏘울이 2009년 미국 출시 이래 5년4개월 만에 누적판매 50만대를 달성한 것은 쏘울의 독특한 디자인과, 이 디자인 특징을 극적으로 부각한 햄스터 광고 덕분이었습니다. 유럽에 씨드나 벤가 같은 현지 전략 모델을 내놓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외국에서의 디자인 경영은 아직 진행형입니다. 국내에서는 명실상부 2대 자동차 브랜드이지만 글로벌 자동차 회사의 경쟁이 치열한 미국, 유럽 등 시장에서는 5% 전후의 대중 브랜드 중 하나일 뿐이니까요. 국내에선 확고히 자리매김한 ‘K시리즈’도 해외에선 포르테(K3), 옵티마(K5), 카덴자(K7), K900(K9) 등 다른 이름으로 판매됩니다. 그만큼 브랜드를 통합하기 위한 힘이 충분치 않다는 거죠. 물론, 지금까지의 발전 속도면 K시리즈가 외국에서 자리잡을 날도 머지 않으리라 기대해봅니다. 최근 외국출장을 가 보면 유럽이든 북미든 중국이든 기아차가 부쩍 많아졌습니다.

 

 

1978년형 브리사

 

K9

 

◇기아차, 車디자인에서 문화 디자인으로

 

기아차는 21일 ‘디자인드 바이 케이(Designed by K)’란 새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자동차를 넘어 문화까지 디자인하겠다는 거창한 계획입니다. 아직 구체적이진 않지만, 캠페인 웹사이트(http://kseries.kia.com)도 만들고 꽤 야심 차게 준비하는 듯합니다. 앞서 말한 쏘울 튜닝카 선발대회도 이 캠페인의 하나 아닐까요.

 

기아차는 양적, 질적 성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동차 운전자의 라이프스타일과 문화를 바꾸고, 고객에 더 의미 있는 가치를 전달하겠다고 합니다. 앞으로 영화감독, 사진작가, 패션, 미술, 취미, 여행, 자동차 전문 에디터와 함께 다양한 콘텐츠를 만든다고 합니다.

 

이 캠페인이 호랑이 코 그릴처럼 통일성을 갖추어 한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시너지 효과는 적지 않을 겁니다. ‘디자인 1.0’에서 ‘디자인 2.0’으로 바뀌는 거죠. 사실 2006년 당시 기아차가 내세웠던 것도 디자인 기아 아니라 디자인 경영이었습니다. 자동차의 디자인을 새롭게 하겠다는 일차적인 의미도 있었지만, 경영방식 자체를 새롭게 디자인하겠다는 포괄적인 의미도 담겼었죠.

 

기아차의 새 캠페인 ‘디자인드 바이 케이(Designed by K)’. 기아차 제공

 

앞으로 이 캠페인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시의적절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요즘 소비자는 자동차를 타는 것 자체로만 만족하지 않습니다. 현대차그룹은 이달 송도 도심 레이싱 페스티벌을 열었습니다. BMW코리아도 영종도에 자동차 문화 공원을 표방한 ‘BMW 드라이빙 센터’를 열었죠. 인제와 태백, 영암 서킷을 중심으로 자동차 레이싱 문화가 싹트고 있습니다. 정부의 튜닝산업 활성화 정책으로 잠재된 튜닝 수요가 늘어날 조짐을 보입니다. 애초에 없었던 게 아니라 잠재된 그 무엇을 끌어낸다는 점에선 2006년 디자인 기아 1.0 때와 비슷한 분위기죠.

 

디자인 기아 1.0은 이제 한계에 다다른 때라는 생각도 듭니다. ‘모든 자동차 회사엔 저마다 고유의 디자인이 있는데, 디자인을 내세우는 건 이상하지 않나’는 지적도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만큼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로 인정받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제 디자인에 더할 ‘알파’가 필요하다는 게 핵심입니다. 이제 ‘얼굴’은 그렸으니 ‘마음’을 그릴 때라고나 할까요. 때마침 디자인 기아 1.0을 이끌었던 두 핵심 정의선 당시 사장과 피터 슈라이어 부사장도 각각 현대차 부회장과 현대기아차 디자인 총괄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젠 또 다른 진화가 필요할 때입니다.

 

◇처음이자 마지막 국산 컨버터블 스포츠카는

 

최초의 국산 컨버터블 스포츠카는 뭘까요. 이걸 알면 굉장한 자동차 광이겠죠. 정답은 기아차 엘란입니다. 기아차는 개발비 1100억원, 영국 로터스의 기술과 생산설비를 인수해 1996년 생산한 이래 1999년 단종할 때까지 총 1055대 만들었습니다. 국산 컨버터블은 이후로도 없었으니 현재까진 최초이자 최후의 국산 컨버터블 스포츠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생산 시작 이듬해인 1997년 기아차가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상업적으로도 실패했으니, 비운의 차이죠. 그러나 단종된 지 20년 가까이 된 지금도 엘란 동호회 모임에 100대 가량이 모인다고 하니 엘란에 대한 운전자의 사랑은 대단한 듯합니다.

 

 

처음이자 마지막 국산 컨버터블 스포츠카 '엘란'

 

 

왜 대뜸 기아차로써는 아픈 과거, 실패한 차 얘기를 꺼내느냐고요. 엘란이 가지는 상징성 때문입니다. 기아차는 1944년 그 모태인 경성정공(1952년 기아산업, 1990년 기아차)이 만들어진 이래 줄곧 혁신을 달려왔고, 자동차와 문화를 디자인해왔습니다. 디자인 기아란 것도 뭔가 새로운 걸 만든 게 아니라 그저 과거에서부터 있었던 DNA를 다시 끄집어낸 거죠.

 

기아차는 1962년 최초의 국산 승용차 K-360(삼륜차)를 만들었고, 1973년 경기도 소하리에 최초의 일관생산형 종합 자동차공장을 만들고, 이듬해 최초의 국산차 ‘브리사’를 내놓아 반향을 일으켰죠. 1981년 정부의 자동차사업 합리화 조치를 발표하면서, 기아차는 승용차를 단종하고 소형상용차만 만들어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도 맞았지만, 곧바로 승합차의 대명사가 된 ‘봉고’를 내놓으며 새로운 성공 신화를 써내려갔죠. 봉고는 1987년 포드와 손잡고 내놓은 프라이드와 함께 지금까지도 그 이름이 이어질 정도로 히트했죠. 1993년 출시한 스포티지도 지금껏 국내에 없던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라는 장르를 개척했습니다. 1996년 출시한 엘란도 이런 독특한 기아차의 문화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삼륜차 K-360

 

브리사 픽업 TODTKS

 

봉고

 

1세대 프라이드

기아차는 1998년 현대차에 피인수되기까지 ‘종업원이 곧 회사의 주인’이라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지배구조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런 구조는 무모한 도전과 그에 따른 높은 부채비율(1997년 813%)로 기아차를 법정관리로 몰고 갔지만, 그만큼 자유분방한 DNA를 갖고 있기도 합니다. 이 문화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내실 위주의 보수적 경영과 정의선 전 기아차 사장의 디자인 경영으로 이어지며 안정 속 변화를 추구하는 현재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기아차는 지금도 국내 최초로 양산형 전기차를 내놓는 등 새로운 도전을 나서고 있습니다. 최근 레이 전기차에 이어 쏘울 전기차도 내놨죠. 연내 플래그십 세단 K9을 앞세워 미국, 유럽 고급 차 시장에도 도전장을 내밉니다. 언젠가는 엘란 같은 컨버터블 스포츠카도 내놓지 않을까요. 올 5월 부산모터쇼에 선보였던 콘셉트카 ‘GT4 스팅어’는 정말 멋졌습니다. 뒷도 든든합니다. 현대차그룹은 이전과 달리 확고한 리더십이 있고, 기아차도 연 글로벌 판매 282만7000대, 연매출 47조6000억원, 영업이익 3조1000억원의 탄탄한 실적(2013년 기준)을 바탕으로 합니다. 올해도 상반기에만 155만대를 팔았으니, 300만대를 넘길 듯합니다.

 

 

콘셉트카 네모(NAIMO)

 

네모 실내모습

 

콘셉트 스포츠카 'GT4 스팅어'. 기아차 제공

 

신고
Posted by 김형욱
책을 읽고2014.02.06 20:29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최평규 S&T그룹 회장. 2012년. 리더스북

 

정치인이나 기업인의 자서전은 일단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된다. 어떤 사적인 목적이 있으리라는 의심이 든다. 물론 그렇지 않은 자서전도 있지만. 이 책도 처음부터 색안경에서 벗어나긴 어려웠다. <카리스마 경영 스토리>란 부제를 봤을 때도 그냥 그랬다. 재무재표와 보도자료, 공시로만 알던 S&T그룹에 대해서 공부하자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은 좀 달랐다..

 

꽤 재밌었다. '이런 사람도 있구나' 했다. 1979년 27세 때 창업해 30여년만에 3개 계열사, 연간 매출 1조4000억원대의 꽤나 큰 대기업을 꾸리는 '회장님'이 됐다. 자본가도 아니고 일반 직장인이. 대기업 출신도 아닌 보통의 엔지니어가. 기자가 지금껏 접해 온 대기업은 대부분 1950년 이전의 자본가가 해방 이후 만든 기업들을 모태로 지금껏 성장했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처럼 맨땅에 헤딩한 사람은 드물었다. 그런데 이렇게 1970년대 말, 젊은 나이에 창업해서 이렇게 성공한 사람이 있다니. 아니, 원래 이 시대에 이런 '젊은이'가 많았었나? 흥미로웠다.

 

이래저래 특이할 것 없는 젊은 시절 이력이다. 우리랑 비슷하다. 보통의 가정에서 태어나 경희대 기계공학과 입학, 1970년대 대학 시절 시위 참여, 학생회장 도전에 실패, 그렇게 취직 잘된다는 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도 결핵을 앓느라 시기를 놓쳐 대기업 대신 중견기업 '센츄리'에 입사. 지금 보통의 대학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감정이입 된다.

 

여기서부터 '미래의 회장님'의 대담성이 돋보인다. 중소 에어컨 회사에서 일벌레로 일하다보니 '열교환기'라는게 사업성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열교환기에 필요한 핀튜브를 만들면 돈이 되리라 생각했다. 집을 팔았다. 6명 직원의 '삼영기계공업사(현 S&TC)'를 차렸다. 요샛말로 '벤처 정신'이다. 벤처라고는 해도 엄청난 투자였다. 17평짜리 아파트 한채 판게 400만원인데 미국산 핀튜브 기계가 6000만원이었다고 한다. 아파트 15채 가격에 인생을 베팅한 거다. 27세에. 어휴. 나라면 아무리 사업성이 있다고 생각해도 그렇게 쉽게 결정 못한다. 대출이자가 얼마나 됐을까.

 

제조업이지만 벤처 정신으로 무장했다. 땅장사는 안 했다. 공장은 외주, 기술 하나만 믿고 갔다. 이 책에선 '엔지니어의 기업가 정신'이란다. 국내에선 사실상 국산화 독점, 고속성장시대다보니 빵빵 터졌다. 80~90년대 승승장구했다. 물론 그냥 승승장구한 건 아니다. 지뢰밭 투성이. 부도를 낸 고객사도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핀튜브 기계가 화재로 불타기도 했다. 매출의 60%이던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이 갑자기 거래 중단을 선언하기도 했다.

 

그런데 기업가한테는 늘 위기가 기회인가 보다. 위기 때마다 회사를 업그레이드했다. 핀튜브가 불나서 망가지자 그걸 무작정 분해했다. 청계시장 부품을 뒤져 다시 조립했다. 완벽하진 않지만 고쳤다. 제대로 된 도면도 없이. 한번 고쳐보니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들었다. 만들었다. 차츰 기술이 늘었다. 그럴 듯했다. 직접 만든 기계로 생산량을 계속 늘렸다. 한국중공업이 거래중단을 선언하자 무작정 해외로 나섰다. 해외 수출이 시작됐다. 때마침 IMF 외환위기가 터졌다. 내수기업은 연쇄부도였지만, S&TC는 달러 차익을 엄청나게 남겼다. 위기가 없었다면 이런 기회는 없었을 터. 물론 기본적으로 '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나만의 기술 + 불굴의 의지'다.

 

몇차례 위기를 기회로 삼다보니 이제 스스로 위기를 자초하기 시작했다. 중견 부품기업으로 잘 나가던 2003년, 통일중공업(현 S&T중공업)을 인수한다. 기억은 안나지만 첨예한 노사갈등으로 이미 갈 데까지 갔던 회사랜다. 그런데 때론 싸우고 때론 타협하며 결국 회사를 살려냈다. 좀 정상화 될 만하니 2006년엔 자동차 부품사인 대우정밀(현 S&T모티브)도 인수했다. 또 노조와 싸워야 했다. 그 동안 회장이 단식도 했다. 강성노조에 집단 린치를 당하기도 했다. 그러고도 또 노조를 찾아가서 대화했다. 지금 이들 회사는 여지껏 한 차례의 구조조정도 없이 건재하다.

 

물론 이 책에 나와있지 않은 '팩트'도 있다. 2007년 인수한 효성기계공업(현 S&T모터스)는 적자 끝에 이달 코라오홀딩스란 회사에 매각이 확정됐다. 실패 사례다. 이 책이 쓰여진 2012년 당시에도 실적이 어려웠다고 하는데 책에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 그래도 S&T그룹 전체적으로 봤을 땐 여전히 성공적이지만.

 

이 책을 쓴 이유는 뭘까. 최평규 회장. 27세 때 창업해서 이 책을 쓴 2012년엔 60세가 됐다. 33년 개인사다. 명예 때문일까? 주가를 높이기 위해서일까? 단순히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랬다면 의미가 퇴색했을 터, 독자인 내 흥미도 반감했을 터. 아마도 뭇 대학에서 강연하듯 이 책을 통해 무언가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것 같다. 경영자에, 대기업에, 노조에, 언론에 거침없이 쓴소리 한다. 머니 게임 M&A를 일삼는 재벌과, 직원을 돈으로 보고 구조조정을 일삼는 무책임한 경영자를 비판한다. 본인에게 'M&A의 귀재'란 쓸데없는 별명을 붙여주는 언론을 점잖게 타이른다.

 

어느 정도 미화됐을 순 있다. 그래도 억지스럽지 않다. 구태여 자서전 형태를 고집하지 않아서 더 좋다. 이런저런 질문에 대한 답변을 구술체로 풀어낸 형식이다. 자연스럽다. 가끔 질문자가 극성스럽게 회장님 자랑, 우리 회사 자랑을 하지만 회장님의 답변은 사뭇 질박하다. (그러고보니 이 질문은 누가 했을까. 공격적인 질문이 없는 걸 보니 최소한 기자는 아니다ㅋㅋ) 여튼 재밌다. 스토리가 좋다. 최소한 조금 성공했다고, 명예 좀 얻겠다고 출판사랑 손잡고 내는 상투적인 자서전과는 다르다. 나, 지금의 기자 일은 충분히 재밌지만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한 내게, 긍정적 에너지를 준다. 까짓거 될 것이란 확신 있으면, 기술력 갖추면, 될 때까지 열심히 해 보는 거다.

 


신고
Posted by 김형욱
자동차 이야기2013.11.28 19:19

‘까임방지권(까방권)’이란 속어가 있다. 네티즌은 병역기피가 만연한 연예계 풍조 속에서 군 복무를 성실하게 마친 연예인들은 사소한 실수 정도로는 비난하지 말자며 이들에게 ‘까방권’을 부여했다.


기자 세계에도 이런 문화가 일부 있다. 어려운 회사, 성실하지만 대내외적인 곤경에 빠진 회사의 사소한 흠은 넘겨 봐 주는 분위기가 있다. 2009년 이후의 쌍용차가 그랬다. 쌍용차는 당시 대규모 정리해고와 노조의 옥쇄파업으로 파산 직전에 몰렸다.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회사를 살려야 한다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있었다. 기사는 원칙적으로 개인적 감정이 드러나지 말아야 하지만, 한줄을 쓰더라도 좀 더 애정이 들어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쌍용차가 최근 부활하는 게 내심 반갑다.


최근에는 르노삼성이 ‘까방권’을 얻은 듯하다. 신차 QM3에 대해 이례적으로 호의적인 기사가 나온다. 사전계약 7분 만에 첫 물량 1000대가 모두 팔렸다든지, 수입차인데 가격이 2000만원대 초중반으로 싸다든지 하는 식이다. 지난 2년 새 판매량과 국내 점유율이 반 토막 나면서 측은지심이 작용한 듯하다.


기자는 원래 까칠하다. 평소대로라면 왜 12월 출시키로 한 신차의 공식 출시가 내년 3월로 미뤄졌는지 다뤘을 터였다. 유럽보다 훨씬 싸다고 자랑하는 호들갑도 흐지부지 넘어갔다. 사실 대부분의 유럽산 수입차는 원래 국내가 더 싸다. QM3와 동급인 한국GM의 쉐보레 트랙스는 1940만~2289만원의 가격에도 비싸다고 욕을 먹었다.


그런데 르노삼성의 모회사인 르노그룹까지 까방권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초대 르노삼성 사장을 지낸 르노그룹의 2인자 제롬 스톨 부회장은 최근 국내 공장의 경쟁력을 높이지 않으면 지금의 수출 물량도 뺏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한국 시장 점유율을 현 5%에서 10%까지 높여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 얘기는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다. 한국GM은 지난 2011년 10개 신차를 투입하고 나서야 간신히 10%에 도달했다. 그런데 르노는 현재의 단 4개 차종에 수입 신차 1종만 추가해 놓고 이를 달성하라는 것이다. 그나마도 마지막 수입 신차 QM3는 물량도 못 대는 상황이다. 생산부족분 해소 방법도 우려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자체 개발·생산이 아닌 위탁생산이다. 당장 물량은 늘어나겠지만 자생력 없는 하청 생산기지로 전락하는 수순으로 비친다.


까방권도 그냥 주는 게 아니다. 병역의무를 성실하게 마친 연예인처럼 어디까지나 한국 사회에 이로워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르노의 전략은 국내 자동차 산업에 이롭지 않아 보인다. 이대로면 르노삼성의 장래는 어둡다. 기자들의 ‘까방권’에 반가워해야 할 르노삼성 홍보실에선 최근 두 달 새 8명 중 팀장을 포함한 3명이 잇달아 퇴사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윤상직 산업부 장관, 프랑수아 프로보 르노삼성 사장이 올 4월 열린 '2013 서울모터쇼'에서 QM3와 기념촬영하는 모습. 이땐 QM3가 수입차가 될 줄 알지 못했다. 르노삼성 제공

신고
Posted by 김형욱
일기장2013.11.18 02:32

이영우 피아노 독주회 '초심'. 2013년 11월 16일 저녁 7시~8시 반. 예술의 전당 리사이틀홀.

 

친구의 권유로 공연을 보러 갔습니다. 솔직히 누구의 어떤 공연을 보겠다는 생각은 없었죠. 그저 오랜만의 클래식 공연. 그리고 거기서 피아니스트 이영우를 만났습니다. 남자인 줄 알았는데 여자 분이시더군요. 즐거운 경험이었기에 간단히 후기 남깁니다.

 

한 시간 반의 공연은 한 편의 공포영화를 보는 듯했습니다. 1부 <새로운 소리를 찾아서> 3개의 곡은 온갖 불협화음으로 긴장감을 이어갔습니다. 실제로 공포영화에 어울릴 법한 사운드였습니다. 단 한번도 편안한 화음이 없었죠. 그러나 2부 <초심>은 때론 비장하게 따론 서정적으로 아름다운 화음을 들려주며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달랬습니다. 중반부까지 두려움에 떨게 만들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웰 메이드 공포영화 그 자체였습니다.

 

1부 첫 곡부터 다시 볼까요. 조나단 하비의 '메시앙의 무덤'이라는 피아노 곡이었습니다. 무대인사가 끝나고 조명이 한 번 꺼졌다 켜진 후 이어지는 불협화음. 게다가 알 수 없이 울려퍼지는 일그러진 전자 피아노 음. 묘한 조화. 공포스러웠습니다.

 

이영우는 첫 곡이 끝난 후 간단한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워낙 실험적이었기에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는 그의 말. 능숙한 말솜씨는 아니었지만 의미는 충분히 전달됐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불협스러운 감정을 갖고 있다. 그게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저 또한 불쾌하고 불협한 글에 빠져들곤 하니까요.

 

참고로 전자음은 크리마(CREAMA)라는 팀이 맡았습니다. 외국 분. 전자-어쿠스틱 뮤직 앤 오디오 연구소의 약자라네요.

 

이영우는 여성답지 않은 당당한 체구에 강력한 힘을 보여줬습니다. 연주에 에너지가 넘쳤습니다. 서울예고-서울대 음대-독일 베를린 예술대학. 분명 프로필은 엘리트 코스를 밟은 교수님인데 거친, 밑바닥의 에너지가 느껴진 건 저만의 생각이었을까요. 남다른 면이 있었습니다.

 

1부 두 번째 곡으로 가면 그의 독특한 선곡이 더 두드려졌습니다. 죄르지 쿠르탁이란 작곡가의 유희란 곡 일부를 들려줬습니다. 어린아이가 피아노로 장난치는 걸 모티브로 지은 곡이라고 했습니다. 진짜 주먹과 팔꿈치를 이용한 파격적인 주법이 등장했죠. 이것도 정확히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친다는 악보가 존재할까요. 악보는 열심히 넘기시던데. 피아노를 타악기처럼 다룬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선율보단 리듬감이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묘하게 신났습니다. 제가 10년 동안 드럼을 쳤기 때문일까요. 물론 역시 불협이었습니다.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면 이뤘지만.

 

1부 마지막은 피에르 조드로브스키의 '흰색의 시리즈'란 곡이었습니다. 역시 전자음과 조화를 이룬 곡. 가장 괴기스러웠습니다. '흰색'을 연상했는데 하필 이날 춥기도 해서 황량한 눈밭이 떠오르더군요. 한국 초연이라고 하던데. 연주자가 외국의 작곡가에 곡을 부탁하고, 작곡가가 한국 초연을 기뻐하며 곡을 주는 모습이 떠올라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곡은 괴기스럽기 짝이 없고.

 

전 1부 40여 분 공연 동안 줄곧 불안했습니다. 10분여 휴식 기간에도 이 불안함이 가시지 않았죠. 이대로 집에 갔다면 집에서도 내내 그랬을겁니다. 그러나 큰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프로그램 표에는 분명 2부에 브람스의 소나타가 연주될 것이었거든요. '소나타 올림 바 단조, 작품번호 2'. 브람스를 잘 알진 못하지만, 분명 전통 클래식이었겠죠. 소나타라면 분명 서정적인 곡일 테고요. 역시 그랬습니다.

 

피아니스트 이영우는 2부가 되자 더 여성스러운 원피스로 갈아입고 등장했습니다. 슈타인웨이 피아노도 좀 더 뒤편으로 옮겨졌죠. 악보? 그런 거 없었습니다. 이영우에게 매우 편안한 곡임이 틀림없었습니다. 제게도 그 편안한 감정이 전해졌습니다.

 

2부 시작 직전. 작은 해프닝도 긴장을 풀어주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어떤 관객, 아저씨의 전화 벨이 울렸습니다. 바로 끊었음 모르는데 그 아저씨는 미련하게 그걸 들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이 전화벨은 계속 울렸죠. 사람들은 웃었습니다. 이영우도 미소지었습니다. 제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1부 시작 때 그랬다면 어땠을까요. 짜증 혹은 불안함이 더해졌을 것 같습니다. 1부의 긴장감은 그만큼 컸습니다.

 

연주도 편안했습니다. 절제된 1부 연주와 달리 2부 연주는 연주자의 실력을 한껏 뽐내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편안했습니다. 연주자 스스로 긴장감을 줄이고 마음껏 즐기는 느낌이었습니다. 아 정말 부러운 실력. 쇼팽은 곧잘 들어 대부분 알고 있는데 브람스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들어본 듯 익숙한 주제 멜로디가 몇 차례나 나왔습니다. 전 그 흥에 발도 구르고 머리도 끄덕였답니다. 로큰롤이었다면 일어나서 춤 추고 싶었을 정도로 흥에 겨웠습니다. 말씀드렸듯 이영우의 연주는 여성 피아니스트 이상의 힘을 가졌습니다. 이영우도 흥에 겨운 나머지 춤을 추는 듯 느껴졌습니다.

 

우연하게도 이런 인상적인 공연을 볼 수 있게 돼 행운이었습니다. 가끔 클래식 공연을 찾아다니는 수고스러움이 결코 헛되지 않군요. 이영우는 아마 내년 이맘때 다시 독주회를 연다고 합니다. 일부러 공연을 찾아다니는 수고를 하기에는 일상이 너무 고되지만, 내년 다시 추워질 때쯤, 이영우라는 피아니스트의 독주회가 열리지는 않나 찾아보게 될 것 같네요.

 

신고
Posted by 김형욱
일기장2013.11.18 01:39

오랜 만에 축구 직관 했습니다. TV로 보는 거랑 직접 보는 거랑 사뭇 다르더군요. 축구를 잘 하거나 전문가는 아니지만, 축구를 하는 것도 보는 것도 좋아하는 만큼 후기 간단히 남기려고요.

 

 

이날 경기에서는 '원톱' 김신욱의 플레이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정말 머리 맞추는 재주는 기가 막히더군요. 단순히 머리를 갖다대는 게 아니라 후방 손흥민, 김보경, 이청용에 정확히 떨궈주는 모습이 일품이었습니다. 자신감이 생겼는지 나중엔 머리가 아닌 발로도 기가 막히게 떨궈주더군요. 마크하던 스위스 선수는 큰 힘을 못 썼죠.

 

전 늘 '키 크고 못 하는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재발견했습니다. 키도 큰데 발재간도 있는. 오프사이드 판정이 나긴 했지만 헤딩 슛, 빗맞긴 했지만 백힐 슛.. 아쉬웠지만 훌륭했습니다. 수비수 입장에선 정말 부담스러울듯. 한국의 '크라우치(영국 예전 장신 국대)'.

 

더욱이 이날 경기에선 홍명보가 우려하던 뻥 축구가 줄었죠. 가끔 김신욱을 향한 롱 볼이 오기도 했지만 뒤에 손흥민-김보경-이쳥용 라인이 받쳐주다 보니. 정확한 장면은 기억 안나지만 발패스도 좋았어요.

 

손흥민도 이름값 했습니다. 역시 골로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수비수를 교란하는 모습, 역습 때 질주하는 모습은 명불허전이었습니다. 김보경과 함께 국대 발재간둥이인듯 합니다. 다만 그 역시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할 정도의 압도적인 모습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제 기대가 너무 컸죠?ㅎㅎ

 

오늘 김보경은 상대적으로 두드러지지 않았습니다. 몇 번의 드리블 시도도 막혔고. 차라리 교체 투입된 이근호의 투지는 실제로 보니 더 좋더군요. 몇 번 위협적인 찬스도 만들었습니다. 결승골 어시스트도 이근호였죠. '투지는 넘치는데 못 하는 선수'라는 제 편견은 와르르. 결정력만 갖춘다면 투지는 리버풀의 루이스 수아레스 급.

 

이청용. 오늘의 주장. 골도 넣고 잘 하긴 했는데 '소녀슛'은 진짜더군요. 1대 1 찬스 한번 포함 두 번의 찬스에서 힘 없는 슛을 날렸죠. 업그레이드 할 방법 없을까요. 물론 온 몸을 이용한 헤딩 결승골이 빛난 하루이기는 했지만.

 

기성용은 잘했습니다. 킥도 날카롭고, (코너킥에서 홍정호 동점골 어시) 예전과 달리 투지도 더해진 느낌이었습니다. 적극적인 수비 가담으로 멋진 태클도 하나 있었죠. 감독 비하 논란이 약이 된 걸까요. 노란 신발을 신고 나와서 멀리서도 구분하기 쉬웠습니다. 장현수와 중원 후방을 맡았는데 장현수는 모르는 선수이기도 했던 만큼 두드러지지 않았습니다.

 

수비라인에서 제일 눈에 띈 건 왼쪽 윙백 김진수였습니다.  작았는데 엄청 빠르고 돌파력도 있더군요. 이영표의 후계자 소리를 듣는 선수죠? 이 포지션에 분데스리거 박주호도 있죠? 여긴 치열하겠네요. 두 센터백 김영권과 홍정호는 무난했습니다. '분데스리거' 홍정호는 한 골 넣기도 했고. 한 골 먹긴 했지만 대체적으로 안정적이었습니다. 스위스가 후반 들어 투지가 줄어든 것 같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우리가 압도한 경기였던 만큼 수비 능력을 체크하기는 어려운 경기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이용. 노란머리라서 눈에 띄었는데요. 전반 초반 실점에 관여해서 본인 스스로 좀 안타까웠을 것 같아요. 기성용에 주는 패스가 정확지 않았고, 급기야 골로 이어졌죠. 슛이 워낙 날카롭기도 했지만. 그 외에는 활발한 움직임 보여줬습니다. 이용 선수 힘내요.

 

음? 골키퍼에 정성룡 대신 김승규라는 선수가 올라왔네요. 첫 골 먹고 나서야 정성룡이 아닌 걸 알았어요. 하필 이날 경기에 앞서 정성룡이 국내 프로축구에서 실수를 했었죠? 김승규. 첫 골은 누구라도 막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코스가 완전 사각으로 잘 깔려들어와서. 후반쯤 1대 1 슈퍼세이브도 하나 했죠. 역전 분위기를 만든 순간 같았어요. 그런데 이후에 불안한 장면이 한두번 있었던 것 같아요. 기회를 더 쌓으면 큰 경기에서도 더 잘 하겠죠.

 

홍명보 감독의 전략도 손색 없었던 것 같아요. '쌍룡'은 여전히 건재했고, 손흥민-김신욱 절친의 호흡도 좋았어요. 후반 뻥축구 카드로 쓰던 김신욱을 선발 투입하고 스피디한 윤일록을 후반 투입한 것도 좋은 변화 같았어요. 손흥민 대신 나온 남태희는 제가 주목하지는 못했지만 이후 역전골이 나왔으니 활력은 불어넣은 셈이겠죠.

 

유럽 상위권에서 뛰는 선수는 손흥민 밖에 없지만, 다 각팀에서 나름대로 역할을 하며 선전하고 있는데다 국내와 일본 J리거도 정말 잘 해 주고 있는 만큼 앞으로가 더 기대됩니다.

 

다음 날 일본-네덜란드 전도 관심을 모았더랬죠. 일본도 정말 잘하더라고요. 일본이 바르셀로나나 스페인 같은 '티키타카'라면 우리는 독일 바이에른 뮌헨이나 이탈리아 유벤투스 같은 힘의 축구 스타일. 조만간 한 판 붙어봤으면 좋겠네요. 누가 이기든 흥미로운 경기가 될 거 같아요.

 

http://sports.media.daum.net/live/kfa/slide.html?media-id=58832&planusid=71010393&categoryId=2

(한국 대 스위스 평가전. 다음 하이라이트 영상)

신고
Posted by 김형욱
정치 이야기2013.07.22 11:58

그제 '희망버스'를 탄 약 3000명이 현대차 울산 공장에서 집회를 가졌습니다. 오랜만에 죽창 같은 게 등장했고, 경찰도 물대포·소화기로 맞섰습니다. 집회가 격해졌나 봅니다. 공장 진입 철조망이 뜯기고, 대치하는 과정에서 수십여 명이 다쳤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과연 이걸 어떻게 봐야 할까요.

 

◇"비정규직 정규직으로 전환하라"

 

배경부터 살펴보죠. 발단은 2012년 2월 현대차 사내하청 최병승 씨의 승소입니다. 사내하청 근로자(현대차 협력사 소속)도 오랜 기간 정규직과 사실상 같은 일을 한다면 사실상 현대차 직원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이 판결까지 약 6년 걸렸습니다. 워낙 법적으로 어려운 부분이어서 1~3심까지 간 후 대법원이 다시 내려보내고 올라오는 우여곡절이 있었죠.

 

의미있는 결과였죠. 대기업이 낙찰받고, 실제 생산은 2~4차 하청사가 하는 불합리한 사회 구조에 대한 반란. 국내 최대 노조인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이에 비정규직의 불법성을 대법원이 인정한 결과라며 모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회사 입장에선 받아들일 수 없었죠. 당연합니다. 사내하청이라도 어디까지나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거든요.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한 공장 업무와 단순 업무를 모두 동일하게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더욱이 법률적으로만 따지면 최병승 씨 개인의 승소라면 최병승 씨만 복직시키면 될 일이지, 다른 사람은 해당사항 없거든요. 승소 전례가 있으니 개별 소송을 걸면 될 문제거든요. 물론 1만3000여 비정규직이 일제히 현대차에 소송을 거는 일은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사측도 양보합니다. 승소한 최병승 씨를 복직시킨 건 당연한 일이지만, 최병승 씨와 비슷하게 정규직과 동일한 생산라인에서 비슷한 일을 하는 사내하청 근로자를 6000여 명으로 추산하고 이를 일부씩 순차적으로 정규직 전환하겠다는 방안을 내놨습니다.

 

금속노조는 이를 거부했습니다. '정몽구 회장의 사과, 전원 정규직 전환.' 최병승 씨는 울산 공장 내 철탑에 올라 농성합니다. 그게 아마 지난해 10월부터니까 벌써 9개월 째네요.

 

<현대차 사내하청 놓고 법률 공방 '2라운드'> 2012년 12월 13일.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http://media.daum.net/economic/industry/newsview?newsid=20121213163105183

 

◇정규직보다 복잡한 비정규직 문제

 

현실적으로 사내하청 직원은 현대차 소속 직원이 아닙니다. 사내하청 회사 직원입니다. 그런데 최병승 씨는 '사실상' 현대차 직원 판결이 났습니다. 여기서부터 헷갈립니다. 현대차에 있어 비정규직 노조는 아직 실체가 없습니다. 어디까지가 사내하청이고 비정규직인지 모호합니다. 게다가 정규직 노조도 있습니다. 사측은 정규직 노조와의 협의 없이 비정규직 문제를 단독으로 처리할 수 없습니다.

 

현대차 사측, 정규직 노조, 사내하청 기업 사측,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 등 최소 4개의 이해관계가 다른 집단이 존재하는 셈입니다. 물론 정규직·비정규직 노조 모두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지만 서로의 입장은 다릅니다. 지난해 말 이들 이해집단간 협의가 올초 중단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정규직 노조의 미지근한 태도에 비정규직 노조가 공동 협의 중단을 선언했죠. 복잡합니다.

 

파업 양상도 다릅니다. 4만여 정규직 노조가 파업하면 현대차 국내 생산 라인은 완전히 멈춰섭니다. 사측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습니다. 그러나 1000여명 수준인 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가입 노조원이 파업한들 사측은 생산에 대단한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비정규직은 공장 점거라는 무리수를 둘 수 밖에 없죠. 우리의 파업이 사측에 타격을 주지 않으면 파업의 의미는 없어집니다. 더 거칠어지고, 매번 다치는 사람이 생기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현대차 사내하청 노조 10일 파업.. 몸싸움에 수십명 부상> 2013년 7월 10일.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http://media.daum.net/economic/autos/newsview?newsid=20130710195906562

 

다행히 올 6월 초 이들 이해단체가 다시 머리를 맞댔죠. 둘다 꽤나 전향적으로 대응하려는 모양새를 보였습니다. 물론 이후 금속노조의 연이은 파업과 '희망버스'로 평화적인 해결책은 요원해 보이지만..

 

<현대차 비정규직 노사협의 재개.. '실마리 풀리나'>

http://media.daum.net/economic/autos/newsview?newsid=20130609124605619

 

◇현대차는 상징일 뿐, 정치의 문제다

 

현대차 사측은 최병승 씨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했습니다. 회사로서 정규 인력의 증가는 중장기적으로 큰 부담일 수 있지만, 이런 갈등에 대한 당장의 부담이 워낙 크니까요. 그런데 왜 금속노조는 이를 수용하지 않고 다소 무리한 요구를 계속하며 갈등을 빚는 걸까요.

 

생각컨데 현대차는 상징성을 띌 뿐 '비정규직 문제'는 명백한 정치적 사안이기 때문인 듯 합니다. 여기서 최대한의 요구를 끌어내야 나머지 모든 비정규직에 힘을 실어줄 수 있습니다. 여기서 확실한 비정규직의 '승리'를 이끌지 못하고 애매하게 타협하면 다른 곳에서 말빨이 안 먹힐 수 있습니다. 노동계의 정치적 동력도 약해집니다. 쉽게 타협할 수 없는 문제죠.

 

사실 현대차의 노동운동은 단일 노조로는 최대 규모인 만큼 이들의 모든 결정은 상징성을 지닙니다. 여기서 통과된 안건은 다른 많은 기업들의 노조로 확산됩니다. 새벽 근무 폐지가 대표적이죠. 여기서 하니까 기아차도 한국GM(내년 1월 목표로 추진중)도 하잖아요. 이미 충분한 복지 혜택을 누리는 이들 노조가 '귀족 노조'라는 욕을 먹어가면서도 결코 타협하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들이 누리는 복지가 우리에게 직접적인 혜택이 있는 건 아니지만, 간접적으로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죠.

 

비정규직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차 입장에선 모처럼 대화를 시작해 놓고 다시 무력 시위에 나서는 금속노조가 밉겠죠. 하지만 금속노조 입장에선 결코 타협할 수 없습니다. 단순히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게 아니라 그 동안의 불법성을 인정하고, 시정하라는 거죠. 결과적으론 같은 얘기지만 명분이 다르죠. 

 

금속노조의 최근 3대 과제가 ▲2009년 쌍용차 구조조정 문제 ▲현대차 비정규직 ▲2010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였다고 합니다. 한진중공업은 정리해고를 철회했고, 쌍용차는 희망퇴직자 455명이 최근 복직하는 등 일부 성과가 있었습니다. 물론 희망퇴직자·정리해고자는 아직 남아 있고 노동계의 '회계조작 의혹 제기는 이어지고 있지만. 남은 건 현대차 비정규직입니다. 여기서 최대한의 성과를 내야 합니다. 그리고 금속노조는 한진중공업 문제를 이슈화하고 해결하는 데 공을 세웠던 '고공농성' '희망버스'를 앞세워 현대차와 경영계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희망버스, 진정한 '희망 버스' 되야

 

우려도 있습니다. 희망버스가 아니라 절망버스, 폭력버스라고 비아냥대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해당 지역 시민들이 불편하다며 민원을 넣습니다. 노동 운동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반응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국정원의 정치 개입 의혹에 대해선 분개하는 시민들이 현대차 정규·비정규직은 귀족노조라며 비난합니다.

 

<희망버스 타고가 술판.. '난장버스'로> 2013년 7월 21일. 세계일보 이보람 기자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30721200319403

 

<'폭력으로 얼룩' 현대차 희망버스 해산(종합)> 2013년 7월 21일. 연합통신 장영은 허광무 김근주 기자

 http://media.daum.net/economic/industry/newsview?newsid=20130721111206018

 

물론 보수의 언론 장악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하지만 꼭 그런 것 같진 않습니다. 세계일보가 보수거나 친자본적인 언론은 아니지 않나요. 보도가 악의적이었다 치더라도 불필요하게 보수에 역공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분명 문제입니다.

 

<희망버스 보도, '정몽구'는 없고 '폭력'만 있다> 2013년 7월 21일. 미디어스 곽상아 기자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5804

 

<현대차 희망버스 동행기 "연대 통한 비정규직 철폐 희망 다시 갖게 됐다"> 2013년 7월 21일 경향신문 박철응 기자

http://media.daum.net/society/welfare/newsview?newsid=20130721230405908

 

다음 기사 댓글을 한번 보면 달라진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댓글이 모든 여론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음 기사 댓글은 통상적으로 진보 측 입장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댓글 대부분은 이번 희망버스에 대해 회의적입니다. 취업난, 제대로 된 직장이 없어진 가운데, 현대차 노조가 갖던 '상징성'이 이제 옛 말이 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현대차 노조의 자녀 취업 특혜 등에 따른 세습 논란 등이 이들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부추겼죠. 사람들이 이들이 강력한 이권 집단이 돼 버린 것처럼 느끼는 겁니다. 더욱이 국내 대부분의 시민은 현대·기아차를 타고, 대부분 갈수록 비싸지는 자동차 가격에 불만을 갖고 있거든요. 결국 이 불만이 귀족 노조로 이어지는 형국입니다.

 

당장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진 모릅니다. 이미 사측은 상당 부분 양보를 한 상황이니 노동계가 결단만 하면 곧 전향적인 결론이 나오겠죠. 하지만 노동 운동에 대한 이런 불편한 시각은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습니다. 노동자의 지지를 먹고 사는 노동계가 노동자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보수는 많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전에 비해 점점 세련되지고 있습니다. 개개인의 멍청한 실수를 막지는 못하지만, 80년대 때처럼 시위자를 무력으로 찍어누르지 않습니다. 그럴수록 죽창을 든 진보는 외곬수적이고, 이슈 지향적이고, 그로 인해 정당성이 퇴색해 보입니다.

 

진보도 변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더 세련되게. 보수보다 더 치밀하게. 힘 대 힘으로 붙던 1980년대와는 시대가 다릅니다. 이제 절대적인 선과 악의 대결구도는 없습니다. 죽창이 아니라 이해관계와 정당성, 설득력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촛불 문화제'는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건 어디로 사라졌나요.

 

저도 제가 다니는 회사의 노조원이고, 그 혜택을 보고 있습니다. 노조가 없던 회사에서 있던 회사로 이직하며 그 차이, 그 필요성을 절실히 느낍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정당성을 기반으로 한 노조원의 지지를 담보로 했을 때만 노조의 존재 의미를 가집니다.


일부 대기업 노조는 이권단체처럼 비춰지고, 노동계가 대기업 노조에 매달려 이를 정치적으로 이슈화하려 하는 현재의 상황이 불안해 보입니다. 더욱이 글로벌화가 가속화하면서 국내의 산업 기반은 점차 약해지고 있습니다. 일본의 20년 장기 불황이 언제 우리에게 덮칠지 모릅니다. 1960년대 세계 자동차의 메카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디트로이트 시가 파산하듯 언제 국내 산업 기반이 무너져 위기를 겪을지 알 수 없습니다.

 

현대차라는 개별 기업의 노조원이 아닌 진정 국가 전체의 노동자가 오래도록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해 볼 시점 아닐까요. 일부 노동자가 아닌, 모든 국민(노동자)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노동 운동으로 변신해야 할 시점 아닐까요.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신고
Posted by 김형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