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2014.09.16 05:16

조승우, 김혜수, 백윤식이 주연한 타짜 1편에 비해 중량감이 떨어져서일까. 타짜2(타짜 -신의 손)의 평가가 별로 안 좋다는 얘길 들었다. 물론 지금까지의 기록으로는 빅뱅의 탑, 신세경을 위 쟁쟁한 배우와 견주기는 어렵다. 아무래도 가볍다. <써니> <과속스캔들> 같은 비교적 가벼운 흥행영화를 만들어 온 강형철 감독도 웬지 중량감이 떨어져 보인다.

 

그런데 김세영, 허영만 원작의 타짜 1~4부를 못해도 100번 이상, 타짜의 모티브가 된 48+1까지 본 허영만 마니아로써, 결과적으로 타짜2가 원작에 훨씬 충실해 보인다. 그리고 더 재밌다.

 

1편을 보고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재미없었단 건 아니다. 다만, 원작과 느낌이 달랐다. 한국전쟁 직후,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 1편의 시대적 배경은 둘째치고라도, 캐릭터의 성격도 달랐다. 원작과 같으란 법은 없지만, 만화 속 캐릭터보다는 조승우, 김혜수, 백윤식이란 배우 그 자체의 느낌이 너무 강했다. 원작에서 순박했던 주인공 고니는 너무 극단적으로 타락했고, 타락한 평경장은 너무 도덕적으로 비춰졌다. 닳고 닳은 여편네 정마담도 김혜수라는 옷을 입고 너무 세련된 사기꾼으로 변했다. 물론 그 나름대로 재미있었지만, 원작을 어떻게 구현했을까 기대한 만화 마니아로썬 아쉬웠다.

 

크라이막스는 만화 타짜 1부에서 가장 멋진 장면, 고니가 동료 고광렬의 죽음, 아귀와의 승리 후 도박을 끊고 개과천선한다는 내용이 영화에서는 빠졌다. 오히려 고니는 타락할대로 타락한 채 죽어버린다. (수정: 죽진 않죠. 해외도피해서 카지노를 전전하는 뉘앙스로 끝나죠ㅎ)

 

2편은 그런 아쉬움을 날려준 좋은 작품인 거 같다. 최소한 감독과 배우 모두 '만화 원작에 충실해야지'란 생각에 사로잡힌 나처럼 만화를 100번 이상 보고, 그 만화에 동화된 느낌이 난다. 영화로써 호불호가 갈릴 순 있겠지만, 나로썬 이런 노력이 엿보이는 2편에 더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역시 70~80년대라는 만화 속 시대적 배경은 90년대부터 2000년대로 다르다. 주인공 함대길이 뼛속까지 타짜로 거듭나게 된 감옥행이 없다는 것도 다르다. 그런데 그 느낌에는 충실하다. 빠르게 지나가는 함대길과 우사장(이하늬)의 베드 신은 마치 만화 속에서 화투의 그림을 형상화 한 정사 씬과 오버랩되고, 광숙이(신세경)와의 첫만남, 사랑한 끝에 칼로 손등을 찍는 장면 등은 만화와 '따로 또 같이' 비슷한 느낌을 구현한다. 가장 큰 줄거리상의 변화, 감옥에 갔다오지 않은 부분도 광숙이 오빠 광철이(김인권)의 감옥에서의 생활로 얼추 틀을 맞춘다. 만화를 보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이미 만화를 본 상태에서 영화화를 즐기려는 사람에게는 꽤나 자연스럽다.

 

영화평론가들이 함대길의 연기가 가볍다고 하더라. 그런데 함대길이란 캐릭터는 원래 가볍다. 아니, 허영만의 만화 그 자체는 무겁지 않다. 해학이 넘친다. 그 해학 속에 '심쿵'하는 깊이가 담겨 있다. 타짜1편의 진지함은 마치 이현세의 만화를 보는 듯했다. 허영만에게는 오히려 이런 유쾌함이 더 어울린다. 어떻게 영화 속 캐릭터 하나하나가 이렇게 만화 속 캐릭터를 빼다 닮았는지.. 감독, 스텝, 배우 모두 고생했다.

 

'마른 오징어에서 엑기스를 짜내는' 똥식이 곽도원의 징글징글함도 영화 속에 잘 묻어난다. 영화에서 기술적으로 구현하기 어려운 것 빼곤, 만화를 그대로 살려냈다. 배우의 무게감을 훌훌 벗어던지고 오롯이 원작을 바라본 느낌이랄까. 아니, 배우에 무게감이 떨어지니 오롯이 원작을 바라본 걸까.

 

만화를 안 본 사람이 이 영화를 보면 어떤 느낌일까. 나 같이 더 좋은 느낌을 받으려면 원작을 한번 보고 영화를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그나저나 만화적인 요소가 가득한 3편은 또 어떤 식으로 구현될까. 그리고 너무 스펙타클해서 도저히 2시간짜리 영화로 담는 게 불가능해 보이는 4편은 어떤 식으로 표현될까. 영화화하려면 상당한 각색이 필요할텐데.. 한껏 기대를 해본다. 그나저나 만화가 허영만은 역시 최고의 이야기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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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욱
책을 읽고2014.07.28 06:00

-서중석 성대 사학과 교수(전 동아일보 기자) 2005년(2013년 개정)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출판

 

 

좋은 책이다. 누구나 한번쯤 꼭 읽었으면 좋겠다. 고등학교 역사는 근거도 불분명한 고조선부터 암울했던 조선시대 말기까지만 제대로 다룬다. 이후부터는 이해관계가 너무 엇갈려 청소년에 교육하기가, 교육할 내용을 만들기가 너무 부담스럽다. 유야무야 넘어간다. 아니, 왜곡한다. 그러나,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우리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살아 있는 역사는 바로 지금, 그리고 지금이 있게 된 10~20년 전 얘기다. 그 얘기를 비교적 중립적으로 담으려 했다. 솔직히 약간 좌편향이라는 지적을 받아도 어쩔 수 없지만, 약자 편을 좀 들었다고 책할 건 아니지 않은가.

 

일단 정치 위주로 보자. 1945년 8월 15일. 조선은 독립한다. 대부분은 독립한 줄도 몰랐다. 다음 날인 16일이 되서야 거리로 나와서 만세를 외쳤다. 그러나 이어진 것은 혼돈이었다. 김구, 안창호, 김일성, 여운형, 박헌영, 그리고 초대 대통령이 된 이승만까지.. 수십여 명의 정치인이 수십여 정당으로 헤쳐모인다. 미군정과 소련, 두 곳의 이해관계까지 얽히며 꼬이고 꼬인다.

 

결국 공산주의 계열은 북으로, 자유주의 계열은 남으로 헤쳐모인다. 이 가운데 애매한 분들, 이념이 아니라 어떻게든 남북을 통합해야 한다는 분들은 다 죽거나 정치 무대에서 사라졌다.

 

이승만은 살아남았다. 능력이라고 해도 좋다. 숙청의 두려움에 떨던 친일파와 손잡고 당대 최고 권력인 경찰 조직을 장악했고, 왜곡된 '반탁투쟁'으로 대중의 지지기반을 확보했다. 1948년 남한만의 단독 정부를 수립했다. 미국 생활을 바탕으로 미국과의 '밀당'도 능수능란하게 했다. 키워드는 '반공'. 정치깡패도 잘 활용했다. 그리고 1960년 4월 혁명으로 물러날 때까지 10년 동안 독재한다.

 

그 10년 동안 참 많은 죄를 졌다. 1950년 한국전쟁 땐 가장 먼저 대전으로 도망쳐서 서울 시민에게 "안심하라"고 방송했다. 그리고 서울을 수복하자 남은 사람을 북한에 동원됐다며 무참히 죽였다. 제주에서, 전라도에서, 여수에서 너무 많은 사람을 죽였다. 단위가 수만이다. 일본보다 더하다. 그리고 한국 역사에 '일본이든 어디든 권력에 붙는 자는 계속 권력을 누린다'는 교훈마저 남겼다. 쓰레기.

 

4월 혁명으로 그는 미국으로 도망쳤다. 하야했다. 봄이 오는 듯했다. 그러나 물러나도 정권은 이승만파인 허정 과도정부에 있었다. 그나마도 1년밖에 못 갔다. 박정희를 주축으로 전두환, 김종필, 노태우 등등의 군인 세력은 1961년 5월 16일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고, 1963년 박정희를 대통령으로 '옹립'했다. 그리고 1979년 10월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암살될 때까지 19년 동안 해먹었다. 정적은 암살.납치되고 온간 편법과 개헌을 동원해 정권을 유지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박정희의 이력은 멋지다. 만주 일본군 출신이다. 독립 이후 일본군으로 국군을 만들려고 한 미국 군사훈련학교에 편입됐다. 한국전쟁 전에는 남로당에 종사한 이력도 있다. 이 과거는 그가 평생을 '빨갱이' 혐오로 산 이유이기도 하다. 어쨌든 그 시대를 살아남았고 독재자까지 됐다. 그런데 너무 오래 하려고 해서 탈이 났다.

 

그가 죽으면 끝난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1979년 12월 12일 이번엔 쿠데타 후배 전두환이 일어났다. 지긋지긋하다. 1980년 대통령에 6월 항쟁이 있던 1987년까지 7년을 더 해먹는다. 1988~1992년엔 역시 쿠데타 후배 노태우가 당선됐지만, 이때부턴 표명상으론 제대로 선거해서 뽑았다. 50~60년대처럼 학살, 암살은 없었지만 지금이라면 문제가 될 많은 범법행위-가령 국정원의 정치개입-가 그땐 일상이었다.

 

이후부터는 군부세력과 손잡은 민주당 김영삼, 다음은 박정희 때 암살 고초까지 겪은 김대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무현이 대통령이 됐고, 박정희의 향수를 되새긴 이명박과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그 정권을 이어받고 있다.

 

물론 써 놓은 것처럼 우울한 일만 있는 것은, 이 책이 이런 한탄만 늘어놓는 것은 아니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든, 국가를 위해서든, 모두가 노력한다. 세계 유래없이 눈부신 경제적 발전을 이뤘고, 민주화에도 성공했다. 최소한 지금은 국민이 별 이유 없이 끌려가서 두드려맞는 시대가 아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그냥 이뤄진 게 아니라는 건 알아야 한다. 많은 희생과 노력이 있었다. 그리고 대중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권력을 위해서 권력을 잡으려는 정치인은 널리고 널려 있다. 바로 전 과거를 알아야 하는 이유다.

 

이 책. 정치 얘기 위주지만 그 비중은 60% 정도다. 나머지 40%는 생활, 문화상 등 가십 얘기를 다룬다. 사진과 함께. 깡패 얘기, 미니스커트 얘기도 흥미진진하다. 3개만 언급했지만 역사 상식에도 도움이 될 만한 많은 에피소드가 있다. 서평은 두서없이 썼지만, 이 책은 훨씬 잘 정리돼 있다. 한번 읽기를 권한다.

 

<상식 단어 정리>

 

#반탁투쟁=일본으로부터 해방된 1946년 미·소 양국이 남북한에 들어오자 대중은 다시 일제시대처럼 '신탁통치'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했고, 이는 반탁투쟁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를 영구히 점유할 의도, 의지가 없었고, 이는 이승만 대통령과 손잡은 친일세력이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다소 정략적으로 사용됐다.

 

#이정재, 김두한, 유지광, 임화수, 시라소니(이성순)=1950~1960년대를 풍미한 대표적인 정치깡패. 이중 김두한은 국회의원까지 했다. 국회의사당 안에서의 똥물 투척 사건으로 유명하다. 정치인이 지하세계와 연이 닿아 있어야 한다는 말은 이 시대를 배경으로 나온 말이다. 참 의문사가 많던 시대였다. 이들은 1961년 박정희 대통령의 쿠데타 이후 완전히 몰락했다. 물론 중앙정보부라는 게 이를 대체한 듯하지만..

 

#6월항쟁=공식적인 쿠테타 군부 정권의 마지막인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임을 막은 사건. 1987년 초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이후 전국의 학생, 교수, 노동자가 들고 일어났고, 1980년 광주항쟁 때의 학살을 경험한 전 전 대통령은 결국 정권을 '포기'했다. 진보와 보수가 나뉘어 그 의미를 축소하기도 하고 확대하기도 하지만 역사적으로 굉장한 사건이다. 반만년 한반도 역사에서 처음으로 대중이 권력을 뒤집은 것이다. 아, 물론 1960년 이승만을 몰아낸 4월 혁명도 있지만 이 기쁨은 이듬해 5.16 쿠데타로 너무 빨리 끝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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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욱
책을 읽고2014.02.06 20:29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최평규 S&T그룹 회장. 2012년. 리더스북

 

정치인이나 기업인의 자서전은 일단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된다. 어떤 사적인 목적이 있으리라는 의심이 든다. 물론 그렇지 않은 자서전도 있지만. 이 책도 처음부터 색안경에서 벗어나긴 어려웠다. <카리스마 경영 스토리>란 부제를 봤을 때도 그냥 그랬다. 재무재표와 보도자료, 공시로만 알던 S&T그룹에 대해서 공부하자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은 좀 달랐다..

 

꽤 재밌었다. '이런 사람도 있구나' 했다. 1979년 27세 때 창업해 30여년만에 3개 계열사, 연간 매출 1조4000억원대의 꽤나 큰 대기업을 꾸리는 '회장님'이 됐다. 자본가도 아니고 일반 직장인이. 대기업 출신도 아닌 보통의 엔지니어가. 기자가 지금껏 접해 온 대기업은 대부분 1950년 이전의 자본가가 해방 이후 만든 기업들을 모태로 지금껏 성장했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처럼 맨땅에 헤딩한 사람은 드물었다. 그런데 이렇게 1970년대 말, 젊은 나이에 창업해서 이렇게 성공한 사람이 있다니. 아니, 원래 이 시대에 이런 '젊은이'가 많았었나? 흥미로웠다.

 

이래저래 특이할 것 없는 젊은 시절 이력이다. 우리랑 비슷하다. 보통의 가정에서 태어나 경희대 기계공학과 입학, 1970년대 대학 시절 시위 참여, 학생회장 도전에 실패, 그렇게 취직 잘된다는 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도 결핵을 앓느라 시기를 놓쳐 대기업 대신 중견기업 '센츄리'에 입사. 지금 보통의 대학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감정이입 된다.

 

여기서부터 '미래의 회장님'의 대담성이 돋보인다. 중소 에어컨 회사에서 일벌레로 일하다보니 '열교환기'라는게 사업성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열교환기에 필요한 핀튜브를 만들면 돈이 되리라 생각했다. 집을 팔았다. 6명 직원의 '삼영기계공업사(현 S&TC)'를 차렸다. 요샛말로 '벤처 정신'이다. 벤처라고는 해도 엄청난 투자였다. 17평짜리 아파트 한채 판게 400만원인데 미국산 핀튜브 기계가 6000만원이었다고 한다. 아파트 15채 가격에 인생을 베팅한 거다. 27세에. 어휴. 나라면 아무리 사업성이 있다고 생각해도 그렇게 쉽게 결정 못한다. 대출이자가 얼마나 됐을까.

 

제조업이지만 벤처 정신으로 무장했다. 땅장사는 안 했다. 공장은 외주, 기술 하나만 믿고 갔다. 이 책에선 '엔지니어의 기업가 정신'이란다. 국내에선 사실상 국산화 독점, 고속성장시대다보니 빵빵 터졌다. 80~90년대 승승장구했다. 물론 그냥 승승장구한 건 아니다. 지뢰밭 투성이. 부도를 낸 고객사도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핀튜브 기계가 화재로 불타기도 했다. 매출의 60%이던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이 갑자기 거래 중단을 선언하기도 했다.

 

그런데 기업가한테는 늘 위기가 기회인가 보다. 위기 때마다 회사를 업그레이드했다. 핀튜브가 불나서 망가지자 그걸 무작정 분해했다. 청계시장 부품을 뒤져 다시 조립했다. 완벽하진 않지만 고쳤다. 제대로 된 도면도 없이. 한번 고쳐보니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들었다. 만들었다. 차츰 기술이 늘었다. 그럴 듯했다. 직접 만든 기계로 생산량을 계속 늘렸다. 한국중공업이 거래중단을 선언하자 무작정 해외로 나섰다. 해외 수출이 시작됐다. 때마침 IMF 외환위기가 터졌다. 내수기업은 연쇄부도였지만, S&TC는 달러 차익을 엄청나게 남겼다. 위기가 없었다면 이런 기회는 없었을 터. 물론 기본적으로 '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나만의 기술 + 불굴의 의지'다.

 

몇차례 위기를 기회로 삼다보니 이제 스스로 위기를 자초하기 시작했다. 중견 부품기업으로 잘 나가던 2003년, 통일중공업(현 S&T중공업)을 인수한다. 기억은 안나지만 첨예한 노사갈등으로 이미 갈 데까지 갔던 회사랜다. 그런데 때론 싸우고 때론 타협하며 결국 회사를 살려냈다. 좀 정상화 될 만하니 2006년엔 자동차 부품사인 대우정밀(현 S&T모티브)도 인수했다. 또 노조와 싸워야 했다. 그 동안 회장이 단식도 했다. 강성노조에 집단 린치를 당하기도 했다. 그러고도 또 노조를 찾아가서 대화했다. 지금 이들 회사는 여지껏 한 차례의 구조조정도 없이 건재하다.

 

물론 이 책에 나와있지 않은 '팩트'도 있다. 2007년 인수한 효성기계공업(현 S&T모터스)는 적자 끝에 이달 코라오홀딩스란 회사에 매각이 확정됐다. 실패 사례다. 이 책이 쓰여진 2012년 당시에도 실적이 어려웠다고 하는데 책에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 그래도 S&T그룹 전체적으로 봤을 땐 여전히 성공적이지만.

 

이 책을 쓴 이유는 뭘까. 최평규 회장. 27세 때 창업해서 이 책을 쓴 2012년엔 60세가 됐다. 33년 개인사다. 명예 때문일까? 주가를 높이기 위해서일까? 단순히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랬다면 의미가 퇴색했을 터, 독자인 내 흥미도 반감했을 터. 아마도 뭇 대학에서 강연하듯 이 책을 통해 무언가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것 같다. 경영자에, 대기업에, 노조에, 언론에 거침없이 쓴소리 한다. 머니 게임 M&A를 일삼는 재벌과, 직원을 돈으로 보고 구조조정을 일삼는 무책임한 경영자를 비판한다. 본인에게 'M&A의 귀재'란 쓸데없는 별명을 붙여주는 언론을 점잖게 타이른다.

 

어느 정도 미화됐을 순 있다. 그래도 억지스럽지 않다. 구태여 자서전 형태를 고집하지 않아서 더 좋다. 이런저런 질문에 대한 답변을 구술체로 풀어낸 형식이다. 자연스럽다. 가끔 질문자가 극성스럽게 회장님 자랑, 우리 회사 자랑을 하지만 회장님의 답변은 사뭇 질박하다. (그러고보니 이 질문은 누가 했을까. 공격적인 질문이 없는 걸 보니 최소한 기자는 아니다ㅋㅋ) 여튼 재밌다. 스토리가 좋다. 최소한 조금 성공했다고, 명예 좀 얻겠다고 출판사랑 손잡고 내는 상투적인 자서전과는 다르다. 나, 지금의 기자 일은 충분히 재밌지만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한 내게, 긍정적 에너지를 준다. 까짓거 될 것이란 확신 있으면, 기술력 갖추면, 될 때까지 열심히 해 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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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욱
책을 읽고2013.01.03 15:50

-삼총사 1~2권. 1844. 알렉상드로 뒤마 지음. 박수현 옮김. 일신서적출판사.

 

삼총사 하면 어떤 생각이 들까. 어린 시절 본 동화나 만화? 그 때 분명 다르타냥은 얼굴강아지였다. 포르토스는 돼지, 나머지는 뭐였더라. 아니면 세 명의 총사. 아토스, 프로토스, 아라미스 그리고 주인공 다르타냥의 우정? 또 아니면 영국 버킹검 공작과 왕비 안느의 사랑? 다르타냥과 왕비의 시녀 보나슈의 사랑? 혹은 루이 13세와 리슐리외 추기경의 궁중 암투? 마녀와도 같은 리슐리외의 심복 밀레이디?

 

만화 삼총사

맞다. 하지만 반만 맞았다. 멋스럽게 포장했으나 본질은 그게 아니다. 그저 건달 이야기다. 그것도 아주 마초적인, 사람 목숨 따위는 깃털만큼 가볍게 여기는. 여자는 성적 자기만족 이상, 이하도 아닌. 요컨데 통속소설의 대가 알렉상드로 뒤마의 솔직한 로망이 담긴 통속소설 중의 통속소설이다.


시대적 배경 자체가 그렇다. 뒤마는 1800년대에 산 작가다. 그때만 해도 살인이나 정조 따위의 거추장스러운 ‘제약’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배경을 1600년대로 옮겼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 땐 그런 자질구레한 제약 따위는 없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유부녀와의 바람도 아름다운 일이고, 서로를 죽이는 결투 또한 공공연한 일이었다. ‘답답했던’ 19세기를 벗어나 17세기의 건달 이야기를 통해 작가와 독자의 욕구를 한껏 분출한다는 게 삼총사를 쓴 이유며, 이 책이 ‘롱런’하는 비결일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왕을 지키는 총사대와 리슐리외를 지키는 경호대는 모두 프랑스 소속이지만 서로 싸우기 바쁘다. 연일 전쟁과도 같은 싸움이 벌어진다. 옷깃을 스쳤다는 이유로 서로를 죽이려 했던 다르타냥과 삼총사들이 친해진 것도 이 같은 대결구도 때문이다. 제3국인 영국과의 전쟁을 벌이면서도 이 둘의 건달 무리는 결코 친해지지 않는다.


또 주인공 넷 모두 죽음 따위는 두려워 않는다. 죽음보다 두려운 건 멋이 없는 거다. 출전(出戰)에 앞서 호화로운 장식을 구하려고 여기저기 돈을 구하러(사실상 강탈하러) 다니는 모습은 애처롭기보다는 호기롭다. 전쟁 때도 쪽팔리지 않기 위해 목숨을 건 내기를 하고 영웅이 된다.


더욱이 다르타냥은 야심이 있다. 시골 촌놈이 돼서 후일 총사대장(후속편인 철가면에 등장)이 되는 그는 애초부터 이런 줄타기를 잘 한다. 정치력이 있다. 총사대 편에 서지만 리슐리외와도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한다. 물론 이들 고위층의 눈에 띄기 위한 종횡무진 활약도 있다.


영화도 있었네요. 1980년대 영화라던데 주인공들이 안 멋있음ㅠ

클라이막스는 삼총사 속 여자 문제다. 문란하기가 그지없다. 여성부에서 이 책을 불온도서로 선정하지 않은 건 기적에 가깝다. 삼총사의 맡형 격인 아토스는 슬픈 과거가 있다손 치더라도 포르토스는 요즘 말로 하면 ‘호스트’다. 여자, 특히 돈 많은 유부녀를 꼬셔서 자신을 치장하고 술을 먹는데 탕진한다. 남편의 눈치 따위는 보지 않는다.


아라미스는 성직자를 꿈꾸지만, 그건 애인과 소원했을 때 뿐이다. 소원할 때마다 성직자를 꿈꾼답시고 점잖은 척 하지만 뒤로는 호박씨 다 깐다. 특히 궁중의 높은 분과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한다. (유부녀인지 아닌지는 불명확함)


야심 있는 다르타냥이 여자 문제에 있어서도 ‘1급’이다. 유부녀인 왕비의 시녀 플랑쉐를 꼬신다. 정열적인 사랑에 빠진다. 그러면서도 어둠 속에서 다른 사람을 가장해 적 중의 적인 밀레이디와 하룻밤을 갖는다. 나중에 ‘기사답지 못했다’며 미안해 하긴 하지만 뭐.. 말 뿐이다. 밀레이디가 다르타냥을 죽이려 한 가장 큰 이유는 정적이어서가 아니다. 속임수로 자신을 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밀레이디를 속이는 과정에서 밀레이디의 시녀도 농락한다. 이건 뭐.. 닥치는 대로 하고 다닌다.


그래놓고 소설 말미에 밀레이디가 전과자란 걸 속이고 아토스랑 결혼했고 그만큼 문란한 여자였다는 이유로 처형하는 모습은 마초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뿐 아니다. 영국 버킹검 공작은 정략결혼이었다고는 하지만 엄연히 남편(왕)이 있는 왕비 안느를 유혹하고 안느는 거기에 넘어간다. 얼굴 한 번 더 본다는 이유로 영불 전쟁을 일으킨다. 헐.


여자들을 닥치는 대로 꼬시고, 자고, 제 멋에 겨워 사랑 타령 하다가, 여자가 문란하면 이를 비난하는 이들, 자기중심적인 마초고 모든 걸 힘에 의존하는 건달이다. 음. 황당무계하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누군가 말한다. ‘이봐, 너도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네가 진짜 바라는 건 이런 게 아닐까? 하지 못해서 그러는 것일 뿐..’ 맞다. 얘네들 좀 멋있다. 이성이나 체면을 벗은 난 필시 이들을 동경하고 있을 것이다. 부러워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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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욱
책을 읽고2012.11.22 22:13

이토 준지. 아는 사람은 안다. 기기묘묘한 공포 만화를 그려 ‘이토 준지=공포 만화’란 등식이 성립한다. ‘토미에’, ‘소용돌이’ 등 수십여 권의 이토 준지 시리즈가 있다. 그림체도 괴기스럽다. 그런 그가 외교.정치를 아우르는 시사물을 신작으로 선택했다.

 

 

‘우국(憂國)의 라스푸틴’.

 

라스푸틴은 1900년대 초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괴승이라고 한다. 당시로썬 일종의 심령술사가 아니었나 싶다. 여튼 ‘황제와 황후의 총애를 받으며 전횡을 일삼다 살해당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난봉꾼이기도 했다. 30㎝ 발기 땐 50㎝에 달하는 성기가 아직도 박물관에 남아 있는 모양이다. 인터넷에 사진이 있다. 물론 역사적 사실은 늘 장담할 수 없다. 그 후 공산당이 집권했다. 필연적으로 마지막 황제 밑에서 전권을 휘두른 사람은 ‘악당’이어야 했다.

 

아이러니한 제목이다. '나라를 걱정하는 라스푸틴'이라니. 알려진 것과 달리 라스푸틴이 사실 부패한 세력을 청산하려던 개혁가란 소리인가? 러시아 역사를 깊게 모르니 사실은 알 수 없다. 다만 아이러니한 제목처럼 만화의 주제는 대중에게는 악당이나 신념 있게 나라를 위한 한 정치인을 둘러싼 이야기다.

 

실화, 그것도 자서전을 바탕으로 만들어 진 이야기다. 일본 외교관이자 러시아 전문가 사토 마사루가 원저자다. 2002년 체포 후 집행유예를 받고 공직에서 물러나 시사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꽤 많은 책을 썼다. 자신이 정치적 배경에 의해 체포됐으며, 이 와중에 검찰, 언론이 저자를 궁지로 몰아간다는 자서적적인 책이 인기였던 모양이다. ‘우국의 라스푸틴’은 이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몬스터’ ‘20세기 소년’의 스토리 작가 나가사키 다카시가 각색하고, 이토 준지가 그렸다.

 

일본 외교관의 러시아 전문가 유우키 마모루가 전 언론으로부터 매국노 취급을 받으며 체포된다. 배임, 위계업무방해 등 각종 혐의를 받고 검찰 조사를 받게 된다. 그런데 이 수사, 사실은 츠즈키 미네오란 거물 의원을 잡아넣기 위해 측근을 몽땅 터는 국책수사다. 노무현 때와 비슷하다. 홋카이도 출신인 미네오 의원은 2차 대전 이후 러시아 영토가 된 쿠릴 열도 4개 섬(일본 식으론 북방영토) 반환을 숙원으로 여겼기에 ‘러시아 통’인 주인공을 신임했고 검찰은 미네오의 심복 격인 주인공을 ‘조져서’ 미네오를 ‘털려는’ 작전을 짠다.

 

 

외교나 정치, 검찰이란 족속이 원래 그런 걸까. 아니면 단순히 만화체 때문일까. 괴기스럽다. 음흉하다. 한국과 생리는 비슷해 보인다. 우리나라 검찰도 국책수사 하지 않는가. 검찰이 소환하면, 언론이 보도하면 그걸로 당사자는 사실상 범죄자가 된다. 검찰은 혐의 사실을 언론에 흘리는 여론 재판도 진행한다. 법원 판결이 날 때쯤 사람들은 모두 잊는다. 이 만화에선 ‘검찰 리크’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만화 전반에 걸쳐 황정민.류승범 주연의 영화 ‘부당거래’도 연상된다. 경찰은 ‘가짜 범인’을 쓰는 기획수사, 검사와 기자는 접대 받고 배신 때리는 비겁자, 그 와중에 검경은 서로 헐뜯는다. 지금 현재의 모습 그대로다. 비리 검사를 검사 조직 내에서 수사하고, 초짜 검사가 병신 같이 피의자와 성관계를 맺는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다. 소수일 것이다. 대부분은 좋은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일부가 물을 흐린다. 아주 많이.

 

 

검사가 주인공을 심문하는 긴장 구도가 볼 만하다. 검사는 주인공에 잔뜩 겁을 주다가도 윗선의 죄만 인정하면 집행유예 정도로 풀어주겠다고 한다. 또 검사는 이를 거부한 주인공의 주위 사람을 하나하나 굴복시킴으로써 궁지로 몬다. 채찍과 당근. 언론에서 미네오 의원은 탐욕스런 구악 정치인, 주인공은 그를 추종하는 비리 외교관이 된다.

 

주인공도 반격에 나선다. 프로 정보꾼 다운 방식으로. 대외비 업무를 많이 취급했던 본인이 제대로 입을 열면 미네오 의원 뿐 아니라 역대 총리가 모두 다친다는 거다. 한 명 족치려는 검철 조직으로썬 일이 그렇게 커지는 걸 원치 않는다. 요컨대 주인공은 ‘같이 죽자’는 거다.

 

다른 재미난 요소도 많다. 주인공이 외무고시 출신이 아닌 외교관으로써 받는 차별, 외교계의 온갖 관행들도 소개된다. 실제 인물이니만큼 생생하다. 1990년대 말 개혁개방 시대 때의 러시아 정치사 뒷얘기도 재밌다. 주인공이 외교관, 즉 ‘프로 정보꾼’으로써 활동하는 모습은 꽤나 멋있다. 기자도 결국 ‘프로 정보꾼’인 만큼 배울 점이 있다.

 

 

한국인으로써 불편한 부분도 있을 수 있다. 일본과 독도를 놓고 대립하는 한국 입장에서 러시아 쿠릴 열도를 자신의 ‘북방 영토’라고 가져오려는 걸 좋게 볼 수 없다. 저자 자체가 철저히 자국 이익을 챙기는 우파기에 더 그렇다.

 

하지만 그렇게 깊게 생각할 필요까진 없을 듯 하다. ‘국익을 생각하는 지식인/지도층은 어떤 사람인가’란 점에선 교훈이 있다. 만화 속 인물들은 북방 영토를 가져오기 위해 러시아에 어떤 실익을 주느냐를 놓고 고민한다. 당위성을 주장하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이해관계에 따른 전략으로 본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어떤 이해관계가 있었을까. 엄연한 우리 영토, 독도가 자꾸 전 세계적으로 분쟁구역이란 인식을 주고 있다. 외교적 실책이다.

 

시사만화라도 어디까지나 만화다. 재밌다. 이토 준지의 공포물을 좋아했던 사람, 정치.외교에 둔감한 사람도 재밌게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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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욱
책을 읽고2012.11.16 01:25

-몽테크리스토 백작 1~3권. 1845년. 알렉상드로 뒤마. 박수현 번역. 일신서적출판사(1969년)

 

내가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처음 접한 건 초등학생 때, 아마도 1990년 전후였을 거다. 당시에는 '암굴왕'으로 번역돼 나왔다. 그 때 사랑이니 복수니 돈이니 얼마나 알았겠냐마나는 재밌었다.

 

'14년 동안 감옥에 갇힌 선원 에드몽 단테스가 누명을 쓰고 섬 속 감옥에 갇힌다. 이 곳에서 지식인이자 철학자인 파리아 신부를 만나고 지식을 흡수한 그는 14년만에 탈옥에 성공한다. 그리고 파리아 신부가 갇히기 전 상속받은 어마어마한 돈으로 자신을 모함한 사람들에게 한 명씩 복수한다.'

 

당시 삼총사, 톰 소오여의 모험, 명탐정 홈즈, 성웅 이순신, 로빈슨 크루소, 15소년 표류기, 소공녀, 알프스의 소녀.. 등 주옥같은 소설이 많았으나 암굴왕은 그 중에서도 웬지 기억에 남는 책이었다. 성인 통속소설이 어린이 책으로 요약됐던 만큼 이해 못하는 부분도 많은 것 같다. 20대 초반 문득 다시 3권의 전집을 샀다. 성인이 돼 다시 읽으니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도 이해 됐다.

 

그리고 얼마 전 책을 정리하던 중 이 책을 발견하고 다시 한 번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잘 때, 일할 때 빼고는 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스무 살 때와는 또 다른 감흥이 밀려왔다. 나는 내년이면 어느덧 에드몽 단

 

테스가 14년만에 탈옥하던 34살이 된다. 어렸을 땐 미처 몰랐던 미묘한 감정들도 속속 이해하게 된다.

 

이 책은 사실과 거짓을 버무린 '팩션'이다. 사실을 기반으로 한 허구의 이야기. 그리고 통속 소설이다. 실제 소설 속 샤토 딥 감옥은 존재한다. 극적으로 탈옥한 사람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보물이 묻혀 있던 몽테크리스토 섬도 마찬가지다. 물론 보물은 없었지만. 약 40년 전. 지금으로 치면 1970년대 허구의 이야기를 써서 히트를 친 대중 소설이었다. 당시 이 책의 인기는 대단했다. 극작가로 성공한 그는 이 책을 통해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다. 몽테크리스토 섬은 관광 명소가 됐다.

 

대부분 어릴 적 이 책을 읽었을 것이다. 탈옥 스토리의 고전과도 같은 책이다. 하지만 성인이 돼 다시 읽은 사람은 그보다 훨씬 적을 터. 예전에 몰랐던 새로운 사실들만 몇 가지 짚어보자.

에드몽 단테스(몽테크리스토 백작)가 누명을 쓴 것은 단테스의 약혼녀인 메르세데스를 사랑한 군인 페르낭, 단테스가 스무 살의 젊은 나이에 선장이 되는 걸 시기한 배의 회계담당 당그라르, 이를 묵인한 일수꾼 카도루스 3인이 단테스를 검찰에 신고했기 때문이다. 단테스는 아무것도 모른 채 나폴레옹 황제의 복귀를 도모하는 세력의 심부름을 하려 했다. 그리고 마르세유 검찰 빌포르는 단테스가 단순가담자란 걸 알았으면서도 아버지가 연루됐다는 걸 은폐하기 위해, 또 자신의 승진을 위해 그를 감옥에 가둔다. 서로 다른 이유지만 4명이 단테스를 샤토 딥 지하 감옥으로 끌어내린다.

 

검찰의 위세가 대단하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비슷해 보인다. 결과적으로 왕에게 나폴레옹의 '반역'을 직접 보고하게 된 빌포르 검사는 후일 무소불위 권력의 검찰총장이 된다. 또 페르낭은 국회의원, 당그라르는 파리의 은행주가 된다.

 

단테스는 감옥 안에서 평생의 은인인 파리아 신부를 만나 많은 걸 배웠고, 무엇보다 탈옥 후에도 몽테크리스토 섬에서 묻힌 엄청난 액수로 환산할 수 있는 보물을 얻게 된다. 당시 은행의 보유액의 10배 가량이다. 아마 지금 돈으로 1000조원 가량이 될 것이다. 신한은행의 총 자산이 288조원이니까. 참고로 현재 우리나라 1년 예산이 325조원 정도다. 소설에서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재산은 현대적인 은행의 효시 격인 로스차일드 일가와 비견된다. (실제 그런 표현이 나옴) 그는 이 돈을 광산이나 유럽 여러 국가의 국채 등에 분산투자해 영구적인 자산으로 바꿔 놨다. 그는 이 막대한 돈에다가 감옥에서 배운 학식과 선원다운 힘과 용기를 더해,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지니게 된다.

 

탈옥 후 10년 동안이나 어디서 뭘 하는지 소설에는 나오지 않는다. 보물을 자산화하고, 전 세계를 여행 다니며 이 부를 향유하는 가운데 틈틈히 복수를 준비한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자신을 감옥에 넣고, 자신의 사랑하던 연인을 빼앗고, 아버지를 굶어 죽어 돌아가게 만든 사람에 대한 분노는 소설의 극적 마무리를 위해 10년 미뤄진다. 몽테크리스토 백작은 어디까지나 통속소설이다.

 

그는 이후 복수를 위해 파리 사교계에 나온다. 그의 나이는 어느덧 40대 중반. 50대 전후의 배신자들은 이미 당대의 거물이 돼 있다. 24년이 지난 지금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다. 그의 옛 애인이자 약혼녀인 메르세데스를 빼고는. 그리고 사회적 지위를 빼앗고 정신적으로 되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준다.

 

스토리보다 재밌는 건 최고급만 찾는 그의 취향이다. 복수도 복수지만 구태여 사교계에 가서 거물들과 교류하며 자신의 압도적인 식도락을 뽐낸다. 아마 영화 '귀여운 여인'의 거부 리처드 기어 같은 당대의 부자의 전형은 모두 이 책을 본받아야 한다. 실제 뭇 이야기가 이 책을 모티브로 삼았을 가능성도 크다. 마초적인 백작의 성격은 초인적인 절대권력과 카리스마를 가진 헐리우드풍 영웅들과 흡사하다. 이 남자, 완벽하다.

 

1800년대 중반 유럽에도 국채, 주식투자, 은행 같은 현대적 개념의 경제 활동이 상당히 발전해 있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단위가 달라 직접 환산은 어렵지만, 소설은 금전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묘사한다.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얼마를 주고 산 말 두 필을 당그랄 남작 부인에 선물해 파리 사교계에 화제가 됐다. 당그랄 은행의 총 자산은 몇백만 에퀴였다'는 식이다. 당그라르는 결국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조종하는 주식투자로 인해 큰 돈을 잃고 파산하게 된다.

 

이는 분명 보통의 독자의 로망을 자극하는 모습이다. 아니 저자 스스로의 로망이었던 모양이다. 저자 소개를 보면 알렉상드로 뒤마 역시 촌구석에서 올라와 극작가 및 소설로 성공해 파리 사교계에 입성했고, 벌어들인 돈이 엄청났던 만큼 쓴 돈도 엄청났다. 결국 파산을 거듭, 빈곤한 말년을 맞았다.

 

여차저차 몽테크리스토 백작은 복수를 다 이뤘다. 그 후에는 어떻게 됐을까. 이 이야기는 독자의 로망에 충실하다. 자신이 페르낭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 산 노예 에데와 사랑에 빠진다. 단순한 노예가 아니다. 과거 그리스의 공주다. 이국적이면서도 너무나도 아름다운 20대 처자다. 아름다운 만큼 마음씨도 착하다. 복수하느라 지친 40대 중년의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기에는 그만이다. 아니 이미 나이가 들어 젊은 처자와의 로맨스를 이룰 수 없는 저자나 독자의 숨겨진 로망을 끌어내기에는 충분하다. 백작은 말한다. '오오- 이런 나에게도 아직 사랑의 감정이 남아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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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욱
책을 읽고2012.11.02 00:52

*골목사장 분투기. 강도현 지음. 2012년. 인카운터.

 

자영업자가 늘고 있다. 불안정한 기업의 고용 상황은 사람들을 경험도 일천한 자영업의 길로 내몰고 있다. "상사에 아부하는 더러운 짓거리, 샐러리맨 짓거리는 못 하겠다. 차라리 닭이나 튀겨야겠다. 카페나 차려야지." 이런 무사안일한 태도가 이를 부추긴다. 더욱이 프랜차이즈란 이름의 괴물은 당신의 호구로 찍어 창업하라 꼬드긴다. 물론 이들은 당신의 '지속가능한 성장'에는 관심이 없다.

 

이 책은 삼일회계법인 출신. 이래저래 회계를 배웠다 하는 넘이 카페를 차렸다 망하면서 배운 다양한 노하우를 담고 있다. 망하는 사람이야 부지기수지만 '배운 놈'이 망하다보니 그럴듯한 분석을 내놨다. 책이란 게 성공 스토리가 담기는 게 보통인데 워낙 자영업자를 하려는 사람이 많고, 개중에는 80%가 폐업하는 판국이니 이런 책도 잘 팔리는 듯 하다.

 

저자는 자영업자의 대부분이 망할 수 밖에 없는 건 일차적으로 구조적인 이유라고 한다. 자영업자 가구가 전체 인구의 적잖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들의 80%가 망해나간다는 건 이미 사회적인 문제다. 앞서 말했듯 고용 불안이 미성숙한 자영업자를 양산하고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지며 모두가 망해나가는 구조다.

 

물론 성공하는 사람도 있다. 가령 편의점이나 카페, 음식점 더욱이 노하우가 상대적으로 불필요한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나름 전문성이 있는 자전거 판매·수리점은 그런 대로 유지된다. 물론 레드 오션 업종에서도 엄청난 아이템을 갖고 시작해 단골 고객을 들끓게 한다면 그야말로 기사에 실리는 '성공한 자영업자'가 된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경우다. 저자는 노하우와 실력을 갖고도 구조적으로 실패하는 사람들을 적잖게 봐 왔다고 한다.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캐나다 친구가 생각났다. 음악학도인 친구는 현재 캐나다에서 결혼해 '버블 티'란 걸 판다. 음악은 돈이 많이 들고 더욱이 지휘는 기회를 얻기 어려운 만큼 '지속가능 성장'을 위해 부인과 함께 이 사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기획 단계가 길었을 뿐 아니라 사업을 구체화하는 데 3년 걸렸다. 규제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정부가 엄격하게 규제한다. 대신 한번 시작하면 좀처럼 망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지역에 동종 버블티 가게는 이곳이 유일하다고 한다.

 

이 사례는 즉 캐나다 정부는 자영업자의 성패를 단순히 개인의 성패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 복지 차원에서 접근한다는 말이다. (아 물론 캐나다는 모든 게 늦긴 하다. 한국이 너무 빠르게 돌아가는 편이다. 온라인 기사만 봐도..) 저자도 골목사장, 즉 자영업자는 사회적 문제, 복지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고 말한다.

 

권리금이란 독특한 구조도 소액 창업자의 발목을 잡는데 한 몫 한다. 법적인 실체가 없으나 공공연하게 거래되는 게 권리금이다. 권리금을 내지 않으면 장사를 할 수 없으나, 장사를 안 할때 받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법적으로 규정된 내용도 없다. 용산 철거민의 요체도 '권리금을 내고 왔는데 권리금 없이 나가라면 죽으라는 거 아니냐'는 거다. 수천, 많게는 수억원에 달하는 권리금. 돈 많은 사람들의 경우 권리금을 부풀려 장사하며 수익을 내는 이른바 '권리금 장사'를 하지만, 돈 없는 개개인에 있어선 '리스크'다.

 

구조적인 문제도 다루지만 이 책이 재밌는 건 구체적인 실제 사례 때문이다. 자신이 창업하면서 들어간 돈, 그리고 벌 수 있는 돈에 대해서 까발린다. 부동산에서도 프랜차이즈에서도 솔직히 말해주지 않는 내용들. 자영업자의 비서(秘書) 같은 느낌을 준다. 단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아니기에 개별 브랜드로 접근하는 사람에게 해당한다. 이들에겐 꽤나 도움이 될 듯 하다.

 

저자는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통해 돈을 버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단정한다. 구조상으로 그렇긴 하다. 한국형 프랜차이즈는 개별 사업자가 돈을 벌든 말든, 잘 되든 망하든 가맹비와 납품, 시설비로 다 뽑아 먹는다. 가맹점주들이 계속 망하는데도 그 뒤로 가맹하고자 하는 사람은 줄 서 있다.

 

자영업자로 실패하지 않기 위한 여러 방법도 소개한다. 요약하면 '돈이 벌리지 않을 거 같으면 하지 말라'는 거다. 간단한 회계 지식도 필요하다. 정말 간단하다. 들인 이상으로 벌어들일 수 있냐는 거다. 단 상식과 다른 몇 가지 조건이 추가된다. 월 700만원이 들어가는데 1000만원 꼴로 수익이 들어오면 300만원 버는 것 아니냐는 말은 틀렸다. 초기에 얼마나 들였느냐부터가 중요하다. 2억원을 들였다면, 가만히 놀며 연 3% 이자수익만 받아도 연 600만원, 월 50만원이다. 거기에 자신이 자영업 대신 다른 노동을 했을 경우 능력에 따라 100만~200만원은 번다. 아르바이트도 마찬가지다. 개인사업을 할 경우에 비해 리스크도 훨씬 적다. 이를 감안하면 2억원을 들였을 때 매달 700만원을 들여 1000만원 꼴로 수익이 나온다면, 그건 실패나 다름없다. 언제까지 1000만원을 안정적으로 벌 수 있을지 알 수 없을 뿐더러 하루 12시간 일하는 본인의 노동력(150만원이라 쳐 보자)과 이자비용 50만원을 제하면 월 100만원 남는 셈이다. 그나마도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개인사업자라는 리스크를 안고 가야 한다. 4대보험도 안 된다. 아프면 공치는 리스크 넘치는 인생이다. 여기에 자기 자본이 아니라 대출까지 받았으면 물론 더 벌어야 한다.

 

자기가 사업에서 거의 완전히 손을 뗀다는 가정 하에, 혹은 자신의 월급을 적정한 인건비로 포함한다는 가정 하에 임대료, 재료비, 인건비, 부대비용, 각종 세금에 대출 이자, 초기 투자비용에서 기대할 수 있었던 이자수익까지 모두 제하고도 남는 순수익이 쏠찬히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게 기업 재무재표의 영업이익이고, 이 것을 모아 앞으로의 일을 도모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돈을, 그냥 좋다고 흥청망청 써 버리는 사람이 있다면 기업으로 치면 횡령죄에 해당하는 것 아니겠나.

 

하나 더 조언한다. '누구도 믿지 말라'는 거다. 부동산 중개업소는 건물주 편이고, 프랜차이즈는 자기 돈벌이에만 관심이 있다. 누구도 당신의 돈에 대해 책임져 주지 않는다. 그야말로 언제 어디서 맹수, 혹은 사기꾼이 나타날 지 모르는 정글이다. 자신의 인생을 건 도박이다. 철저히 준비해서 하던지. 웬만하면 하지 마라. 차라리 아르바이트를 해라. 당신이 애매하게 속아 들어가기 때문에 잘 준비하는 사람도 밀려나고 있다. 저자는 이 말을 하고 싶은 것 같다. 내 생각도 마찬가지다.

 

덧붙이면 기자로서 인터넷 토양 속 지역 언론을 포함해 수천개에 달하게 된 '골목언론사 분투기'도 재밌을 거 같다. 아니 걱정이다. 마찬가지로 모두가 죽어나고 있는 형국이고, 난 그 안에 속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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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욱
책을 읽고2012.10.19 05:58

-박정희 패러다임. 황병태 지음. 2011년. 조선뉴스프레스

 

기대감은 없었다. 뻔한 제목인데다 '정치인 출신이 정치적인 목적에서 쓴 책'이란 퀴퀴한 느낌이었다. 지은이 황병태는 박통 시절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 격)에서 공직 생활을 하다가, 박통 서거 후 미국서 박사 학위를 땄고, 이후 주중 대사, 국회의원을 지낸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다. 화려한 경력 치고 좋은 책 쓰는 거 거의 못 봤다. 솔직히 정치인의 박정희 찬양이겠거니 했다. 책 자체도 거저 얻은 것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재밌었다. 박정희 찬양인 건 맞다. 하지만 정치인이나 박통의 찬양자로서가 아니라, 철저히 경제적인 데 의미를 부여했다. 정치적인 의미를 철저히 배제했다. 또 관념적으로 '이거 잘했다 저거 잘했다'가 아니라 그 시절 박통의 경제 정책의 속사정을 있는 그대로를 보여줌으로서 한 편의 기업경영 소설을 읽는 느낌도 줬다.

 

이야기는 경제기획원 과장이던 지은이 황병태가, 박정희와 만나면서부터 시작된다. 30대 어린 나이에 파격적으로 대통령과 직대했을 뿐 아니라, 장기영 당시 부총리, 이후락 비서실장도 놀랐을 정도의 신뢰를 받게 된다. 직급을 뛰어넘어 실무자와 자유롭게 접촉하던 박통이 당시 1~4차 경제개발 계획에 가장 필요했던 외국 자본 유치의 실무를 맡던 황 과장의 리포트를 인상 깊게 본 덕분이다. 본인 스스로가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기에 자화자찬의 느낌은 잘 들지 않는다.

 

이후 황 과장은 박 대통령이 현안을 직접 묻고, 직보하는 관료가 됐다. 외자유치 업무에 있어선 사실상 전권을 쥐게 됐다. 평시에서의 일개 공무원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군사정권, 즉 '전시'이기에 가능했다.

 

사실 1960년대 당시 상황은 '전시'나 마찬가지였다. 세계 최빈국. 동남아, 아프리카는 물론 북한보다 더 못 살았다니.. 1980년생인 나로썬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뭘 하려 해도 돈이 없었다.

 

근현대사. 특히 근현대 경제사. '한강의 기적'.. 상식 선에선 알고 있었다. 자유주의와 공산주의가 냉전시대를 맞으며 미국이 서독과 한국(남한)에 대규모 경기부양 정책을 펼쳤고, 그 덕에 우리가 발전할 수 있었다. 그 속도에 세계가 놀랐다. 한 외신은 '한강의 기적'이라 표현했다. 거기까지는 '팩트'다.

 

하지만 실무자의 생생한 경험담은 또 새로웠다. 미국은 우리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3년 전쟁 상흔으로 농업경제도 무너진 마당에 공업 중심 정책을 펴겠다니.. 수요도 없는 배를 만들겠다고 하고(조선업), 차도 없는데 길을 놓겠다고 하고(경부고속도로), 고철도 없는데 쇳물을 만들겠다고 했다(포항제철, 현 포스코). 무엇보다 그걸 할 돈도 없는데, 잘 된다는 보장도 없는데, 그걸 할 테니 돈을 빌려달란다. 무모한 도전이었다. 국내 여론마저 회의적이었다.

 

외자업무 최일선에 선 황병태 씨는 그 무모한 도전 최일선에 섰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유명한 일화 봉이 정선달, 그리스 선박왕을 찾아가 '이 허허벌판(울산)에 조선소를 짓고 배를 만들거니까, 그 배를 사 달라'고 했듯, 돈을 빌려달라 했다. 박정희는 일개 과장에 '대통령 특사' 작위를 붙여 해외 곳곳에 출장을 보냈다. 돈을 빌릴 때까진 오지 말라고도 했다.

 

황 씨의 직접 소관이 아니었던 만큼 직접 연관은 없지만, 일본에서의 차관 얘기도 잠시 언급한다. 수 년 전 김종필 전 총리가 일본과의 과거사를 해소하는 조건으로 대규모 차관을 들여온 게, 현재 반성하지 않는 일본을 만들었다고 비판하는 걸 들은 적 있다. 하지만 그 돈은 현재 '세계 톱5'의 철강사 포스코를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데 쓰였고, 이는 다시 한국이 현재의 산업·수출 강국으로 거듭나는 밑거름이 됐다. 일본 덕이라고 할 순 없지만, '굴욕'이라고만 하기에 그 돈은 너무 유용하게 쓰였다.

 

경제지 산업부 기자로서, 여러 CEO들의 뒷얘기도 재밌다.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 시대였던 만큼, 외자업무를 맡던 황병태 씨는 CEO들과의 접점도 많았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이 서운해 했던 얘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정세영 현대산업개발그룹 명예회장, 한국화학(현 한화, 회장 김승연), '철강왕'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 등의 사업 개시에 얽힌 일화가 소개된다.

 

왜 이런 재밌는 얘기에 '패러다임'이란 재미없는 제목을 붙였을까. 박정희식 경제발전이 결코 순탄치 않은 길을 걸었으나 결국 성공했다는 걸 경제학적으로 이론화하기 위해서다. 사실 자유주의나 공산주의 모두 농업 같은 1차산업의 발전이 산업 발전, 근대화 국가 건설의 첫 단추라고 한다. 하지만 박정희는 농업 경제의 '희생'을 무릅쓰고 곧바로 산업화, 공업화에 나섰다. 국내외에서 무모한 도전이라고 비난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물론 '독재자'였기에 가능한 일이긴 하다. 민주주의를 늦춰가며 '잘 먹고 잘 살기'에 올인한 것이다.

 

박정희 때문일까. 최근 경제학에선 부정부패 없는 건전한 독재자가 후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진입하는 최선이라고 하는 학설도 나왔다고 들었다. 실제 대부분 사례가 그렇다. 유럽 대부분의 산업화는 왕정 때, 동양에서 '수탈'한 막대한 자금을 기반으로 이뤄졌다. 민주화가 이뤄진 건 그 이후다. 비교적 빨리 성장한 미국이나 일본 역시 민주정부의 탈을 쓰되 독점적인 귀족 세력을 기반으로 커 왔다. 현재의 중국? 더 말할 나위 없다.

 

박정희 대통령은 독재자로서 얼마든지 개인적인 부를 쌓을 수 있었다. 실제 많은 아프리카와 동남아 국가가 동일한 수준의 원조를 받았음에도 독재자와 그 주변의 부정부패로 인해 후진국으로 전락했다. 박정희식 경제 모델이, 독재였기에 성공했고, 거기엔 박정희 대통령의 개인적 사리사욕에 없었던 덕분이란 건 부인할 수 없다. 만일 쿠테타 없이 부정부패한 권력 집단이던 당시 국회의원이 우왕좌왕 했다면, 우린 아직 동남아의 한 국가 정도 수준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민주화를 부르짖으며 박정희 시대를 독재였다고 무조건 비난할 수 없는 이유다. 박정희 덕분에 먹고 살 만해 지니까, 그나마 목에 힘주어 비난할 수 있게 됐다는 건 역사 속에서 늘 발생하는 흔한 아이러니다. 사람들은 위기에만 뭉친다.

 

물론 저자가 마지막에 말하듯 '박정희가 민주화의 문을 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박정희는 국가 재건을 위해 노력했을지 모르나 박 정권 말기, 주변의 부정부패는 극에 달했다. 무소불위의 차지철 경호실장을 기억하면 쉽다. 다만 박정희 시대가 갔고, 김재규 당시 중정부장의 총탄은 그 시대의 종식을 확인시켜 줬을 뿐이란 게 역사가를 꿈꾸는 내 시각이다. 86 민주화 항쟁 역시 마찬가지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것 없다. 시대의 수순이었고, 우리는 다른 국가와 비교해 그런대로 잘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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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대선을 앞두고 있고, 개중 유력 후보가 박정희의 딸, 박근혜인 만큼 책 외의 얘기를 덧붙이고 싶다. 기본적으로 온건한 진보 성향이라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이번에 정권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박근혜에게 지속적으로 '아버지의 독재에 대해 사과하라'고 하는 건 민주적이라기보단 파쇼적이라고 느껴진다.

 

역시 박정희 정권을 친일, 친미로 매도하는 것도 유익하지 않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종북으로 몰고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처구니가 없는 얘기다.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은 양비론이라고 비난해도 좋다. 이거냐 저거냐 딱 집어서 흑백논리로 따질 문제가 아니다. 정치에 절대선, 절대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박근혜 후보가 양 극단의 평가가 공존하는 박정희의 딸이란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 역사적 해석에 따라 박근혜 후보의 지지 여부가 갈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미래다. 세세한 공약따위 볼 필요 없다. 지금 당신이 복지국가 건설에 있어 속도를 늦추고 싶다면 박근혜를, 좀 더 빨리하고 싶다면 문재인 혹은 안철수를 찍으면 그만이다.

 

내 기준에서 보면, 한국은 이제 성장 면에선 충분히 목표를 달성했다고 보고, 복지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또 어차피 복지를 할 거면 그 전문가인 진보에 이를 맡기는 게 낫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성장은 이명박 현 대통령까지로 충분하다. 후보는 박근혜, 정당은 새누리당으로 다 바뀌었지만, 어차피 MB 정부, 한나라당의 연장선상이 현 정권에 내 5년을 더 맡기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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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욱
책을 읽고2012.10.06 06:00

우리나라는 엄청난 만화 소비시장이다. 그리고 애니메이션 제작의 상당 부분이 이뤄지는 위탁생산 지역이기도 하다. 하지만 만화 생산국은 아니다. 좋은 만화는 많지 않다. 숨은 고수들은 많다. 하지만 좀처럼 깊이 있는 만화가 나오진 않는다. 거의 유일한 사람이 허영만 정도. 대우도 못 받고 돈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단행본을 포기한 만화작가들은 온라인 웹툰으로 옮겨가 짧고 쉽고 가벼운 만화를 만드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유일한 생존법이기 때문이니 '그들'을 탓할 수도 없다.

 

마치 삼성전자, 현대·기아차, 현대중공업, GS칼텍스 같은 굴지의 제조기업을 거느린 세계 최강 제조국이면서도 칩과 운영체계, 기계를 만드는 초정밀 기계 등 원천 기술은 미국과 일본 등지서 받아오는 한국 산업의 현실이 만화에도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 퀄컴, 애플은 없다!

 

만화 세계 최강대국은 일본이다. 전 세계에서 일본 만화를 본다. 미국에서도 디즈니산 애니메이션이 있지만 대부분이 어린이용, 극히 일부만이 성인용이다. 그나마도 일본 대작가의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다. 국내에서도 일본 애니메이션은 어느 정도 대중적 인기가 있다. 하지만 만화책은 보는 사람만 본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따위의 삼류 에세이가 교양있는 사람의 필독서처럼 여겨지는 반면, 만화는 최고 수준의 '작품'임에도 언제 나왔는지도 모르게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그 흔한 서평 하나 없다. 나 같은 만화 마니아는 그저 '오타쿠'나 '마니아'로 분류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재밌는, 깊이 있는 성인만화는 가끔 소개하고 싶다. 그리고 그 첫 작품으로 '히스토리에'를 꼽고 싶다. 최근 가장 재밌게 본 만화다. 아니 빠져 있는 만화다. 현재 국내에선 7권까지 나온 미완결 작인데 벌써 몇 번이나 본 지 모르겠다. 이 만화 후속작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보기 위해 일본에라도 가고 싶은 심정이다.

 

 만화 히스토리에. 현재 7권까지 연재중.

 

이 작가, 전작을 알기만 해도 상당수 만화 마니아는 고개를 끄덕일 지 모른다. 히스토리에의 작가는 '기생수(寄生獸)'를 쓴 이와아키 히토시(岩明均)다. 기생수는 많은 만화 마니아들이 최고의 만화로 꼽는 작품 중 하나다. 물론 대표적인 청소년물 H2(아다치 미츠루), 아니 그보다 슬램덩크(다케히코 이노우에) 등이 있지만, 성인물에서 이렇게 깊이 있고, 철학적이면서도, 재밌는 만화는 보기 힘들다.

 

참고로 기생수의 내용을 간략히 보자. 언제가부터 인간의 뇌에 기생해 사는 생물이 출현했다. 이른바 기생 짐승, 기생수다. 이 종족은 마치 우리가 밥을 먹고 잠을 자듯, 인간을 잡아먹으라는 '그 누군가의 지시'를 받게 된다. 인간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지능과 힘, 합리성을 가진 우등 생물이다. 이들은 서로를 보호하고 사람을 잡아먹고, 인간 사회에 적응한다.

 

이 가운데 고등학생인 주인공에도 기생수가 들어오려 한다. 그런데 잠에서 깬 주인공은 기생수가 몸에 들어오는 걸 인식하고, 무의식 중에 막는다. 본능처럼 뇌로 가려는 기생수를 붙들어 멘 탓에 이 기생수는, 뇌가 아닌 오른팔에 기생하게 된다. 주인공은 기생수와 한 몸에 동거하는 독특한 존재가 된다. 이후 주인공이 겪는 파란만장한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누군가는 생각했다. 만일 지구에서 인간이 5분의 1로 줄어든다면, 지구는 얼마나 더 아름다워질까'란 주제로 시작한 이 만화는 엄청난 힘을 갖게 된 주인공과 우월하지만 인간 세계의 상식은 전무한 기생수의 공생관계를 재밌게 그려낸다. 그러면서도 인간의 삶에 대해 수많은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덕분에 나는 지금까지 이 만화를 수십, 수백번을 되풀이해서 봤다.

 

히스토리에도 궁극적으로는 비슷하다. 해학 속에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는다. 배경이 현대에서 약 2300년 전 그리스 시대라는 게 다를 뿐이다.

 

주인공은 그리스 시대 해상 (노예)무역을 통해 경제적 부를 축적한 한 도시의 최고 귀족 집안의 어린 소년. 책을 벗삼아 해맑게 살던 이 소년은 아버지의 자리를 노리고 그를 암살한 한 집사의 모략 속에 충격적인 과거를 알게 된다. 본인이 이 집안의 아들이 아니라, 당시 그리스 시대의 노예였던 스키타이족 출신이었다는 것, 그리고 아버진 줄 알았던 사람이 자신의 친부모를 죽이고 자신을 양자로 삼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소년은 집안의 실권을 쥔 집사를 통해 노예로 팔려나가지만, 행운과 실력을 통해 17~18세 때 마케도니아의 가신이 된다. 당시 마케도니아 왕은 필리포스, 불과 20대의 나이에 남유럽과 동방은 물론 인도까지 원정을 나서며 동서양 문명을 하나로 묶은 알렉산드로스 황제의 아버지(선왕)다. 그는 이후 필리포스가 준비해 알렉산드로스가 실행한 '세계 정복'의 꿈을 실현하는 '브레인'으로 성장하게 된다.

 

7권까지는 대략 여기까지다. 줄거리만 늘어놓으면 딱딱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에피소드 하나하나는 주인공인 소년의 엉뚱함과 사랑, 총명함 등으로 벌어지는 재미난 에피소드들의 연속이다. 아리스토텔레스나 필리포스, 알렉산드로스 등 역사 속 유명인사들이 너무 생동감 있게 담겨, 마치 현장을 답사하고 쓴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런 걸 '팩션'이라고 한다더라. 사실(fact)과 가상 세계(fiction)의 합성어, 팩션(faction). 영화 '방자전'이나 최근 상영중인 '광해' 등이 사실에 상상을 더한 팩션 장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히스토리에'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로마 역사를 책으로나마 얼핏 공부한 덕분에 이 작가가 얼마나 많은 사실 고증을 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만화인 만큼 집과 옷, 마을 풍경부터 당시의 전쟁과 기술적인 발전 정도, 사회적 체계까지 매우 상세하게 묘사돼 있다.

 

알렉산드로스가 이중인격자이며, 역사 속에는 한두줄만 묘사됐던 가신의 어린 시절을 생동감 있게 묘사할 수 있었던 상상력 또한 놀랍다. 상상력이 있었기에 글로만 존재하는 당시를 재현할 수 있었고, 재현이 완벽했기에 그 속에서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으리라. 상업적인 재미에 작품성과 철학까지 담다니.. 이런 까닭에 '작가'를 꿈꾸지만 현실에 안주해 태평하게 있는 나의 창작열에 불을 지핀다. 아니, 이런 엄청난 작품에 내 창작열은 자신감을 잃기도 한다. 주인공이 천재듯, 이 작가 역시 천재에 가까워 보인다.

 

정확히 언제 연재된 만화인지는 일본 사이트를 확인하지 않는 한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기생수 완결을 본 게 최소 10년 가까이 된 만큼, 최소 수 년 동안 준비한 역작이지 않을까. 다가올 8권이 사뭇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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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욱
책을 읽고2012.10.05 06:00

-디케의 눈. 금태섭 지음. 궁리 출판. 2008년.

이 책을 샀을 때, 금태섭은 단순히 검사 출신 변호사 중 하나였다. 활발한 방송 및 저작 활동을 펼쳤을 뿐. 아직 읽기 전, 그는 정치계의 '핫 스타'가 된다. 그의 지인 안철수 교수의 대선 출마설이 모락모락 피어나더니 어느덧 그는 안철수를 대변하는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클라이막스는 박근혜의 공보담당 정준길의 '출마포기' 협박을 폭로하는 장면. 이제 금태섭은 명실상부 전 국민이 아는 안철수 대변인, '안철수의 입'이 돼 버렸다. 덕분에 이 책을 읽는 건 단순한 독서가 아니라, 유력한 대선 후보인 안철수가 어떤 사람과 어울리는지 알 계기가 되기도 했다.

금태섭은 누구인가. 올해 46세. 깔끔하 외모 덕에 더 젊어보이는 엘리트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시에 합격한 흔한 스토리. 그런데 좀 괴짜다. 검찰 12년차, 마흔의 나이에 2006년 한겨레에 '현직 검사가 말하는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을 연재한다. 자기 조직을 '디스'한 것이다. 이듬해 자의반 타의반 검사직에서 물러난다. 이후 변호사가 되서 자신의 끼를 책과 방송 활동을 통해 발산한다.

정상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동질감을 느낀다. 솔직히 말해 먼저 배신에 가까운 행동을 해 놓고, 동기, 친분 운운하며 안철수와 박근혜 모두에게 민폐 끼치고, 울먹거리며 사라진 정준길 씨보다 쿨하다. 둘 사이의 친분 정도야 내가 알 수 없다. 하지만 금태섭이 더 쿨한 것만은 확실하다.

뭇 검사들과 친분이 있는 한 지인은 금태섭을 이렇게 평했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굉장히 재수 없는 놈이라고 한다. 자기만 안다." 음.. 역시 알 수 없다. 멀리서 미디어를 통해 본 것 만으론 사실 금태섭이 어떤 놈인지 알 수 없다. 솔직하고 쿨한 놈이란 인상이 있을 뿐. 난 어차피 검찰을 별로 안 좋아한다. 법무부 산하 직장인들이니만큼 어쩔 수 없다지만 하는 짓이 좀 역겹다. (물론 일부만 그런 거겠다. 기자새키들도 그렇듯.) 그런 검찰을 디스하고 나온 놈이라는 점에서 일단은 합격!

어쨌든 책을 통해 이 놈을 좀 더 알아봤다. 음. 역시 괜찮은 놈 같다. 일단은. 무엇보다 글이 쉽다. 내가 '사'자 직업을 싫어하는 이유는 어려운 말 써 가면서 지네들끼리만 노는 거다. 판사,검사,변호사,의사.. 국민의 최일선에서 서비스해야 할 넘들이 지네들끼리만 어려운 용어 써 가면서 '우리'를 하대한다.

글을 쓴 취지도 괜찮다. 쉬운 법률 이야기. 시밤. 왜 이렇게 법이 어렵냐는 거다. 미국만 해도 이렇게 어렵지 않다는 거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보듯,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가령 첫 이야기 '라쇼몽'. 라쇼몽은 하나의 살인사건을 두고 목격자마다 다른 진실이 펼쳐지는 일본 영화라고 한다. 금태섭의 대학 시절, 친구들이 성폭행 당하려는 여자를 구하려다 오히려 남자를 팬 폭력배로 몰렸다. 나이트에서 남자들과 만났을 뿐인 여자들을 증인으로 찾을 길이 없다. 증거도 없다. 때린 남자와 맞은 남자가 있을 뿐이다. 경찰과 검찰, 법원, 변호사는 객관적 진실을 알 길이 없다. 모두 제3자일 뿐이다. 억울하면서도 친구들이 감옥을 가지 않기 위해선 '합의'를 하는 수 밖에 없었다.

이후에도 자신이 검사, 변호사 시절 겪었던 실제 판례와 미국 등 해외의 유명한 판례를 들어 법의 한계점과 앞으로 개선해야 할 바를 논한다.

1994년 LA 흑인 폭동 사태를 촉발한 한인 아주머니 두순자(가게 주인)의 15세 미성년자 좀도둑 나타샤 총기 살해 사건. 달아나는 좀도둑을 총으로 쏴 죽인 사실만 놓고 보면 분명 '과잉'이었다. 그럼에도 두순자 씨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았고 흑인 사회는 분노했다. 하지만 앞선 정황과 CCTV를 본 순간 생각은 달라진다. 이 가게에선 10년 동안 무려 30여 건의 강도 사건과 40여 건의 도난 사건이 일어났다. 그리고 CCTV에는 그 불쌍하게만 보였던 15세 흑인 미성년 좀도둑이 두순자 씨를 개 패듯 패는 영상이 담겼다.

금태섭은 묻는다. 만약 CCTV가 없었다면?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당신이 하는 말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 많이 나오는 이른바 미란다 경고. 이 경고가 생긴 이유에 얽힌 얘기도 감칠나게 말해 준다. 기업을 대상으로 한 막대한 규모의 징벌적 배상에 대한 득과 실, 한국 대법원 운용의 폐해, 배심원제 도입에 따른 효과 등등.. 약 10여가지의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쉽고 재밌는 만큼 순식간에 읽힌다.

엄숙한 법조인이 봤을 땐 양아치 소리 듣게 생겼다. 이단아일 수도 있다. 기자로 치면 육하원칙 다 제끼고, 원고 매수도 안 맞춘다. 제멋대로 써 내려가는 식이다. 하지만 틀에 메이지 않았을 뿐 팩트는 담겼다. 하고자 하는 얘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뭐. 그 정도면 됐지 않은가.

능력도 있어 보인다. 아이러니하게 안철수를 보좌하고 있지만 검찰 개혁을 주장하고 있는 문재인과 함께 일하면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정권이 바뀐다는 전제 하에. 바뀌면 어차피 안철수나 문재인이나 함께 할 가능성이 높으니 검찰에서 쫒겨난 금태섭이 검찰에 메스를 가하는 일도 벌어지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현재로썬 '안티 검찰'인 내가 생각하기엔 통쾌한 일이다. (아, 물론 통쾌하라고 개혁하는 건 아니다.) 정권 안 바뀐다면? 그래도 걱정 없어 보인다. 계속해서 '놀 땐 노는 정숙한 변호사'하면 될 것 아닌가. 이런 책이나 좀 더 썼으면 좋겠다. 법이 사뭇 친근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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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