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2014.07.28 06:00

-서중석 성대 사학과 교수(전 동아일보 기자) 2005년(2013년 개정)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출판

 

 

좋은 책이다. 누구나 한번쯤 꼭 읽었으면 좋겠다. 고등학교 역사는 근거도 불분명한 고조선부터 암울했던 조선시대 말기까지만 제대로 다룬다. 이후부터는 이해관계가 너무 엇갈려 청소년에 교육하기가, 교육할 내용을 만들기가 너무 부담스럽다. 유야무야 넘어간다. 아니, 왜곡한다. 그러나,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우리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살아 있는 역사는 바로 지금, 그리고 지금이 있게 된 10~20년 전 얘기다. 그 얘기를 비교적 중립적으로 담으려 했다. 솔직히 약간 좌편향이라는 지적을 받아도 어쩔 수 없지만, 약자 편을 좀 들었다고 책할 건 아니지 않은가.

 

일단 정치 위주로 보자. 1945년 8월 15일. 조선은 독립한다. 대부분은 독립한 줄도 몰랐다. 다음 날인 16일이 되서야 거리로 나와서 만세를 외쳤다. 그러나 이어진 것은 혼돈이었다. 김구, 안창호, 김일성, 여운형, 박헌영, 그리고 초대 대통령이 된 이승만까지.. 수십여 명의 정치인이 수십여 정당으로 헤쳐모인다. 미군정과 소련, 두 곳의 이해관계까지 얽히며 꼬이고 꼬인다.

 

결국 공산주의 계열은 북으로, 자유주의 계열은 남으로 헤쳐모인다. 이 가운데 애매한 분들, 이념이 아니라 어떻게든 남북을 통합해야 한다는 분들은 다 죽거나 정치 무대에서 사라졌다.

 

이승만은 살아남았다. 능력이라고 해도 좋다. 숙청의 두려움에 떨던 친일파와 손잡고 당대 최고 권력인 경찰 조직을 장악했고, 왜곡된 '반탁투쟁'으로 대중의 지지기반을 확보했다. 1948년 남한만의 단독 정부를 수립했다. 미국 생활을 바탕으로 미국과의 '밀당'도 능수능란하게 했다. 키워드는 '반공'. 정치깡패도 잘 활용했다. 그리고 1960년 4월 혁명으로 물러날 때까지 10년 동안 독재한다.

 

그 10년 동안 참 많은 죄를 졌다. 1950년 한국전쟁 땐 가장 먼저 대전으로 도망쳐서 서울 시민에게 "안심하라"고 방송했다. 그리고 서울을 수복하자 남은 사람을 북한에 동원됐다며 무참히 죽였다. 제주에서, 전라도에서, 여수에서 너무 많은 사람을 죽였다. 단위가 수만이다. 일본보다 더하다. 그리고 한국 역사에 '일본이든 어디든 권력에 붙는 자는 계속 권력을 누린다'는 교훈마저 남겼다. 쓰레기.

 

4월 혁명으로 그는 미국으로 도망쳤다. 하야했다. 봄이 오는 듯했다. 그러나 물러나도 정권은 이승만파인 허정 과도정부에 있었다. 그나마도 1년밖에 못 갔다. 박정희를 주축으로 전두환, 김종필, 노태우 등등의 군인 세력은 1961년 5월 16일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고, 1963년 박정희를 대통령으로 '옹립'했다. 그리고 1979년 10월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암살될 때까지 19년 동안 해먹었다. 정적은 암살.납치되고 온간 편법과 개헌을 동원해 정권을 유지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박정희의 이력은 멋지다. 만주 일본군 출신이다. 독립 이후 일본군으로 국군을 만들려고 한 미국 군사훈련학교에 편입됐다. 한국전쟁 전에는 남로당에 종사한 이력도 있다. 이 과거는 그가 평생을 '빨갱이' 혐오로 산 이유이기도 하다. 어쨌든 그 시대를 살아남았고 독재자까지 됐다. 그런데 너무 오래 하려고 해서 탈이 났다.

 

그가 죽으면 끝난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1979년 12월 12일 이번엔 쿠데타 후배 전두환이 일어났다. 지긋지긋하다. 1980년 대통령에 6월 항쟁이 있던 1987년까지 7년을 더 해먹는다. 1988~1992년엔 역시 쿠데타 후배 노태우가 당선됐지만, 이때부턴 표명상으론 제대로 선거해서 뽑았다. 50~60년대처럼 학살, 암살은 없었지만 지금이라면 문제가 될 많은 범법행위-가령 국정원의 정치개입-가 그땐 일상이었다.

 

이후부터는 군부세력과 손잡은 민주당 김영삼, 다음은 박정희 때 암살 고초까지 겪은 김대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무현이 대통령이 됐고, 박정희의 향수를 되새긴 이명박과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그 정권을 이어받고 있다.

 

물론 써 놓은 것처럼 우울한 일만 있는 것은, 이 책이 이런 한탄만 늘어놓는 것은 아니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든, 국가를 위해서든, 모두가 노력한다. 세계 유래없이 눈부신 경제적 발전을 이뤘고, 민주화에도 성공했다. 최소한 지금은 국민이 별 이유 없이 끌려가서 두드려맞는 시대가 아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그냥 이뤄진 게 아니라는 건 알아야 한다. 많은 희생과 노력이 있었다. 그리고 대중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권력을 위해서 권력을 잡으려는 정치인은 널리고 널려 있다. 바로 전 과거를 알아야 하는 이유다.

 

이 책. 정치 얘기 위주지만 그 비중은 60% 정도다. 나머지 40%는 생활, 문화상 등 가십 얘기를 다룬다. 사진과 함께. 깡패 얘기, 미니스커트 얘기도 흥미진진하다. 3개만 언급했지만 역사 상식에도 도움이 될 만한 많은 에피소드가 있다. 서평은 두서없이 썼지만, 이 책은 훨씬 잘 정리돼 있다. 한번 읽기를 권한다.

 

<상식 단어 정리>

 

#반탁투쟁=일본으로부터 해방된 1946년 미·소 양국이 남북한에 들어오자 대중은 다시 일제시대처럼 '신탁통치'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했고, 이는 반탁투쟁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를 영구히 점유할 의도, 의지가 없었고, 이는 이승만 대통령과 손잡은 친일세력이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다소 정략적으로 사용됐다.

 

#이정재, 김두한, 유지광, 임화수, 시라소니(이성순)=1950~1960년대를 풍미한 대표적인 정치깡패. 이중 김두한은 국회의원까지 했다. 국회의사당 안에서의 똥물 투척 사건으로 유명하다. 정치인이 지하세계와 연이 닿아 있어야 한다는 말은 이 시대를 배경으로 나온 말이다. 참 의문사가 많던 시대였다. 이들은 1961년 박정희 대통령의 쿠데타 이후 완전히 몰락했다. 물론 중앙정보부라는 게 이를 대체한 듯하지만..

 

#6월항쟁=공식적인 쿠테타 군부 정권의 마지막인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임을 막은 사건. 1987년 초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이후 전국의 학생, 교수, 노동자가 들고 일어났고, 1980년 광주항쟁 때의 학살을 경험한 전 전 대통령은 결국 정권을 '포기'했다. 진보와 보수가 나뉘어 그 의미를 축소하기도 하고 확대하기도 하지만 역사적으로 굉장한 사건이다. 반만년 한반도 역사에서 처음으로 대중이 권력을 뒤집은 것이다. 아, 물론 1960년 이승만을 몰아낸 4월 혁명도 있지만 이 기쁨은 이듬해 5.16 쿠데타로 너무 빨리 끝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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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