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이야기2014.07.26 06:00

기아자동차가 지난달 초 여태껏 없던 이색 대회를 시작했습니다. 최고의 쏘울 튜닝카를 뽑는다는 ‘튜닝킹코리아 쏘울 커스터마이징컵’인데요. 꽤 쟁쟁한 실력을 갖춘 튜닝 회사 3곳이 참여합니다. 장커스텀, 피코사운드, 덱스크루. 지난 6월부터 튜닝을 시작한 이들의 작업은 쏘울 브랜드 사이트(http://soul.kia.com)에 중계되고, 오는 8월 2일엔 안산 스피드웨이에서 오프라인 투표도 합니다. 물론 온라인 투표(4~10일)도 있죠.

기아자동차는 내달 초까지 최고의 쏘울 튜닝카를 뽑는 '2014 튜닝킹 코리아 쏘울 커스터마이징컵'을 연다. 여성 프로레이서 셀린권(가운데)가 MC를 맡고,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덱스크루, 장커스텀, 피코사운드 팀이 참여한다. 기아차 제공

꽤 본격적입니다. 일회성 이벤트는 아닌 듯합니다. ‘쏘울 커스터마이징 컵’이란 이름 자체가 이미 2편, 3편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디자인을 내세운 이벤트. 얼핏 보면 이전과 비슷해 보입니다. 디자인 기아란 말은 우리에게도 친숙합니다. 기아차는 2007년부터 꾸준히 각종 매체를 통해 ‘DESIGN KIA’를 알려 왔으니까요. 실제로 기아차는 세련된 자동차 디자인 덕을 톡톡히 봤죠. 그런데 이번 행사는 조금 다릅니다. 한발 더 나간 듯합니다. 자동차를 디자인하는 걸 넘어 문화를 디자인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입니다. 디자인 기아 2.0이라고나 할까요.

 

◇기아차, 자동차업계 '히딩크' 영입하다

 

디자인 기아.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8년 전,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정의선 당시 기아차 사장(현 현대차 부회장)은 그해 9월 삼고초려 끝에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꼽히던 피터 슈라이어(Peter Schreyer)를 디자인 총괄담당(CDO) 부사장으로 영입했습니다. 그해 파리모터쇼에서 ‘디자인 경영’을 선포하며 이를 공식 발표했죠.

 

피터 슈라이어 사장

 

정의선 부회장

 

피터 슈라이어의 기아차 합류는 큰 화제였습니다. 피터 슈라이어는 당시 BMW의 크리스 뱅글(Chris Bangle), 아우디의 월터 드 실바(Walter De Silva)와 함께 유럽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꼽혔습니다. 아우디 TT, A6로 아우디의 변화를 이끌었고,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 가야르도 디자인 작업에도 참여했습니다. 세계 정상급 디자이너가 자동차 산업의 변방인 한국, 기아차에 온 것입니다. 지금이야 현대기아차가 세계 5대 자동차 회사이고 BMW 같은 독일 고급 차 회사에도 한국인 디자이너가 활약하는 시대라지만, 불과 얼마 전 이야기입니다. 아직도 갈 길이 멀고요. 슈라이어는 당시 기아차라는 아직 새하얀 캔버스에 얼굴, 표정을 그리고 싶었다고 합니다.

 

2008년 6월 당시 기아차 디자인 총괄이던 피터 슈라이어 부사장이 미국 디자인센터 개관식에서 연설하는 모습. 기아차 제공

 

피터 슈라이어의 대표작 아우디 TT

큰 모험이었지만, 그만큼 큰 성공을 일궈냈습니다. 2008년 6월 로체 이노베이션(현 K5)을 시작으로 포르테(K3), 쏘울 등에 새 디자인이 적용됐고, 연이어 성공했습니다. 슈라이어가 합류한 지 2년도 안 되는 짧은 시기였고 신모델 모두 개발 초기부터 그가 참여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호랑이 코(타이거 노즈)라 불리는 라디에이터 그릴은 기아차를 상징하는 ‘패밀리 룩’이 됐고, 소비자의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기아차는 이후 180도 달라졌습니다. 2006~2007년 적자이던 기아차는 새 디자인의 신모델에 힘입어 2008년 3085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흑자로 돌아섰습니다. 이후로도 2009년(1조1445억원), 2010년(2조4900억원) 등 해마다 사상 최대 실적을 갈아치웠습니다. 기아차는 지난해도 3조1771억원의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했습니다. 때마침 국외 공장을 확대하며 2006년 126만대이던 연간 글로벌 판매량도 지난해 283만대로 두 배 이상 늘었죠.

 

2008년 출시한 로체 이노베이션. '호랑이 코'로 불리는 기아자동차의 패밀리 룩 6각형의 라디에이터 그릴이 처음 적용됐다. 기아차 제공

 

디자인 기아도 진화했습니다. 2009년 K5를 시작으로 K7, K3, K9까지 이른바 K시리즈가 탄생했습니다. 디자인에 정체성을 심은 후 이름에도 기아차의 정체성을 담은 거죠. 특히 기아차 디자인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대형 세단 K9은 오피러스 이후 10년 만에 선보이는 기아차의 플래그십(flagship) 모델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죠. 올해 미국, 유럽 등 선진 시장에 처음 선보이는데 그 반응이 어떨지 궁금합니다.

 

 

피터 슈라이어가 K9의 디자인을 스케치하는 모습. 기아차 제공

 

슈라이어가 한 일은 단순하면서도 혁신적입니다. 위계질서를 따지는 대신 경영진부터 신참 디자이너까지 꾸준히 일대일로 소통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생각을 모아 기아차의 방향성을 단순명쾌하게 규정했습니다. 이는 2007년 4월 발표한 ‘직선의 단순화(The simplicity of the straight line)’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죠. 자동차 디자인을 직선적이고 단순화하겠다는 뜻도 있지만, 이보단 생각 자체를 직선적이고 단순화하겠다는 의미가 더 큽니다.

 

당연히 좋은 얘기죠. 그러나 말처럼 쉽진 않았을 겁니다. 자동차는 1개 모델에만 수천 명의 사람이 함께 만드는 유기체입니다. 각 부문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다보면 이도 저도 아닌 작품이 나오기 십상입니다. 예를 들어 초기 디자인이 나오면 엔지니어 부문에선 성능을 이유 이를 바꾸려 합니다. 부품 부문에선 디자인에 맞는 부품을 만들기 어렵다며 난감해 합니다. 신차를 개발할 때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는 매일 싸우느라 사이가 나빠진다는 말도 있죠. 일본 자동차 회사의 디자인에 진보가 더딘 건 전통적으로 엔지니어가 강하기 때문이라고 하고요.

 

슈라이어를 영입한 디자인 기아는 이를 바꿨습니다. 물론 슈라이어 혼자 해낸 건 아닙니다. 슈라이어가 한 것은 현재 세계적으로 인정받던 한국 디자이너의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도운 것입니다. 물론 정의선 당시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전폭적인 지지가 없었다면 어려웠겠죠. 기아차는 1998년 현대차에 인수된 이래 같은 엔진, 같은 변속기를 쓰는 현대차와 차별화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이 변화의 핵심은 디자인이었고, 결국 성공했죠.

 

외국 ‘감독’을 영입해 전권을 줬고 그럼으로써 이미 갖고 있던 역량을 극대화한 것. 기아차의 슈라이어 영입과 대한민국 축가대표 팀의 거스 히딩크 영입은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왼쪽부터)정의선 부회장과 피터 슈라이어 사장이 '2009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장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현대차그룹 제공

 

 

◇독일 레드닷 디자인상을 받은 첫 한국차는

 

세계 3대 디자인상이란 게 있습니다. 독일 레드닷 디자인상과 iF 디자인상, 미국 IDEA 디자인상입니다. 이중 레드닷 디자인상은 독일 노르트하임 베스트펠란 디자인센터가 1955년부터 매년 열고 있는 세계 최대 디자인 공모전입니다.

 

여기서 처음 상을 받은 한국차는 뭘까요. 네, 앞서 튜닝카 선발 대회 이야기에서 소개했던 쏘울입니다. 2008년 선보인 1세대 쏘울은 한국차 최초로 레드닷 디자인상 자동차 분야에서 장려상(Honorable Mention)을 받았습니다. 지난해 출시한 2세대 쏘울은 올 초 세계 3대 디자인상을 석권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기도 했죠.

 

1세대 쏘울

 

2세대 쏘울

 

전기차 쏘울EV

 

쏘울은 시작이었습니다. 디자인 기아는 외국에서도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유럽전략모델 벤가는 한국 양산차 최초로 iF 디자인상을 받았고, 이듬해 레드닷 디자인상도 받았습니다. 특히 K5는 2011년 레드닷 디자인상 수송 디자인 분야 최우수상(Best of the Best)에 오르는 등 매년 호평이 이어졌습니다. 기아차는 2008년 첫 수상 이후 매년 상을 받지 않은 해가 없었죠. 자연스레 해외에서의 위상도 달라졌죠.

 

기아차가 외국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1975년 브리사 10대를 카타르에 수출한 이후 꾸준히 자동차 수출을 시도했지만 많진 않았죠. 1986년까지 1만대를 넘은 적이 없으니까요. 1993년 연간 수출 10만대를 넘겨 2007년 국외 공장을 포함한 외국판매가 100만대를 넘었지만 여전히 저가 소형차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현지에서 혹평이나 우스갯감이 되더라도 별수 없었죠. 일본, 미국 경쟁차와도 진검승부를 벌일 수 있게 된 것은 2000년대 말부터입니다. 지난해 국외판매량은 국내수출 114만대, 외국공장 123만대 등 237만대입니다. 아직 완성 단계라고 할 순 없지만 ‘제값 받기’도 한창이죠.

 

이렇게 변하기까지 디자인 부문에서의 호평은 현지에서의 이미지를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물론 기술적인 발전과 현지공장 확대 노력도 있었지만 이것만으로는 고객층을 확보할 수 없었죠. 쏘울이 2009년 미국 출시 이래 5년4개월 만에 누적판매 50만대를 달성한 것은 쏘울의 독특한 디자인과, 이 디자인 특징을 극적으로 부각한 햄스터 광고 덕분이었습니다. 유럽에 씨드나 벤가 같은 현지 전략 모델을 내놓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외국에서의 디자인 경영은 아직 진행형입니다. 국내에서는 명실상부 2대 자동차 브랜드이지만 글로벌 자동차 회사의 경쟁이 치열한 미국, 유럽 등 시장에서는 5% 전후의 대중 브랜드 중 하나일 뿐이니까요. 국내에선 확고히 자리매김한 ‘K시리즈’도 해외에선 포르테(K3), 옵티마(K5), 카덴자(K7), K900(K9) 등 다른 이름으로 판매됩니다. 그만큼 브랜드를 통합하기 위한 힘이 충분치 않다는 거죠. 물론, 지금까지의 발전 속도면 K시리즈가 외국에서 자리잡을 날도 머지 않으리라 기대해봅니다. 최근 외국출장을 가 보면 유럽이든 북미든 중국이든 기아차가 부쩍 많아졌습니다.

 

 

1978년형 브리사

 

K9

 

◇기아차, 車디자인에서 문화 디자인으로

 

기아차는 21일 ‘디자인드 바이 케이(Designed by K)’란 새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자동차를 넘어 문화까지 디자인하겠다는 거창한 계획입니다. 아직 구체적이진 않지만, 캠페인 웹사이트(http://kseries.kia.com)도 만들고 꽤 야심 차게 준비하는 듯합니다. 앞서 말한 쏘울 튜닝카 선발대회도 이 캠페인의 하나 아닐까요.

 

기아차는 양적, 질적 성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동차 운전자의 라이프스타일과 문화를 바꾸고, 고객에 더 의미 있는 가치를 전달하겠다고 합니다. 앞으로 영화감독, 사진작가, 패션, 미술, 취미, 여행, 자동차 전문 에디터와 함께 다양한 콘텐츠를 만든다고 합니다.

 

이 캠페인이 호랑이 코 그릴처럼 통일성을 갖추어 한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시너지 효과는 적지 않을 겁니다. ‘디자인 1.0’에서 ‘디자인 2.0’으로 바뀌는 거죠. 사실 2006년 당시 기아차가 내세웠던 것도 디자인 기아 아니라 디자인 경영이었습니다. 자동차의 디자인을 새롭게 하겠다는 일차적인 의미도 있었지만, 경영방식 자체를 새롭게 디자인하겠다는 포괄적인 의미도 담겼었죠.

 

기아차의 새 캠페인 ‘디자인드 바이 케이(Designed by K)’. 기아차 제공

 

앞으로 이 캠페인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시의적절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요즘 소비자는 자동차를 타는 것 자체로만 만족하지 않습니다. 현대차그룹은 이달 송도 도심 레이싱 페스티벌을 열었습니다. BMW코리아도 영종도에 자동차 문화 공원을 표방한 ‘BMW 드라이빙 센터’를 열었죠. 인제와 태백, 영암 서킷을 중심으로 자동차 레이싱 문화가 싹트고 있습니다. 정부의 튜닝산업 활성화 정책으로 잠재된 튜닝 수요가 늘어날 조짐을 보입니다. 애초에 없었던 게 아니라 잠재된 그 무엇을 끌어낸다는 점에선 2006년 디자인 기아 1.0 때와 비슷한 분위기죠.

 

디자인 기아 1.0은 이제 한계에 다다른 때라는 생각도 듭니다. ‘모든 자동차 회사엔 저마다 고유의 디자인이 있는데, 디자인을 내세우는 건 이상하지 않나’는 지적도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만큼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로 인정받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제 디자인에 더할 ‘알파’가 필요하다는 게 핵심입니다. 이제 ‘얼굴’은 그렸으니 ‘마음’을 그릴 때라고나 할까요. 때마침 디자인 기아 1.0을 이끌었던 두 핵심 정의선 당시 사장과 피터 슈라이어 부사장도 각각 현대차 부회장과 현대기아차 디자인 총괄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젠 또 다른 진화가 필요할 때입니다.

 

◇처음이자 마지막 국산 컨버터블 스포츠카는

 

최초의 국산 컨버터블 스포츠카는 뭘까요. 이걸 알면 굉장한 자동차 광이겠죠. 정답은 기아차 엘란입니다. 기아차는 개발비 1100억원, 영국 로터스의 기술과 생산설비를 인수해 1996년 생산한 이래 1999년 단종할 때까지 총 1055대 만들었습니다. 국산 컨버터블은 이후로도 없었으니 현재까진 최초이자 최후의 국산 컨버터블 스포츠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생산 시작 이듬해인 1997년 기아차가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상업적으로도 실패했으니, 비운의 차이죠. 그러나 단종된 지 20년 가까이 된 지금도 엘란 동호회 모임에 100대 가량이 모인다고 하니 엘란에 대한 운전자의 사랑은 대단한 듯합니다.

 

 

처음이자 마지막 국산 컨버터블 스포츠카 '엘란'

 

 

왜 대뜸 기아차로써는 아픈 과거, 실패한 차 얘기를 꺼내느냐고요. 엘란이 가지는 상징성 때문입니다. 기아차는 1944년 그 모태인 경성정공(1952년 기아산업, 1990년 기아차)이 만들어진 이래 줄곧 혁신을 달려왔고, 자동차와 문화를 디자인해왔습니다. 디자인 기아란 것도 뭔가 새로운 걸 만든 게 아니라 그저 과거에서부터 있었던 DNA를 다시 끄집어낸 거죠.

 

기아차는 1962년 최초의 국산 승용차 K-360(삼륜차)를 만들었고, 1973년 경기도 소하리에 최초의 일관생산형 종합 자동차공장을 만들고, 이듬해 최초의 국산차 ‘브리사’를 내놓아 반향을 일으켰죠. 1981년 정부의 자동차사업 합리화 조치를 발표하면서, 기아차는 승용차를 단종하고 소형상용차만 만들어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도 맞았지만, 곧바로 승합차의 대명사가 된 ‘봉고’를 내놓으며 새로운 성공 신화를 써내려갔죠. 봉고는 1987년 포드와 손잡고 내놓은 프라이드와 함께 지금까지도 그 이름이 이어질 정도로 히트했죠. 1993년 출시한 스포티지도 지금껏 국내에 없던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라는 장르를 개척했습니다. 1996년 출시한 엘란도 이런 독특한 기아차의 문화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삼륜차 K-360

 

브리사 픽업 TODTKS

 

봉고

 

1세대 프라이드

기아차는 1998년 현대차에 피인수되기까지 ‘종업원이 곧 회사의 주인’이라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지배구조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런 구조는 무모한 도전과 그에 따른 높은 부채비율(1997년 813%)로 기아차를 법정관리로 몰고 갔지만, 그만큼 자유분방한 DNA를 갖고 있기도 합니다. 이 문화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내실 위주의 보수적 경영과 정의선 전 기아차 사장의 디자인 경영으로 이어지며 안정 속 변화를 추구하는 현재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기아차는 지금도 국내 최초로 양산형 전기차를 내놓는 등 새로운 도전을 나서고 있습니다. 최근 레이 전기차에 이어 쏘울 전기차도 내놨죠. 연내 플래그십 세단 K9을 앞세워 미국, 유럽 고급 차 시장에도 도전장을 내밉니다. 언젠가는 엘란 같은 컨버터블 스포츠카도 내놓지 않을까요. 올 5월 부산모터쇼에 선보였던 콘셉트카 ‘GT4 스팅어’는 정말 멋졌습니다. 뒷도 든든합니다. 현대차그룹은 이전과 달리 확고한 리더십이 있고, 기아차도 연 글로벌 판매 282만7000대, 연매출 47조6000억원, 영업이익 3조1000억원의 탄탄한 실적(2013년 기준)을 바탕으로 합니다. 올해도 상반기에만 155만대를 팔았으니, 300만대를 넘길 듯합니다.

 

 

콘셉트카 네모(NAIMO)

 

네모 실내모습

 

콘셉트 스포츠카 'GT4 스팅어'. 기아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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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