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2014.02.06 20:29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최평규 S&T그룹 회장. 2012년. 리더스북

 

정치인이나 기업인의 자서전은 일단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된다. 어떤 사적인 목적이 있으리라는 의심이 든다. 물론 그렇지 않은 자서전도 있지만. 이 책도 처음부터 색안경에서 벗어나긴 어려웠다. <카리스마 경영 스토리>란 부제를 봤을 때도 그냥 그랬다. 재무재표와 보도자료, 공시로만 알던 S&T그룹에 대해서 공부하자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은 좀 달랐다..

 

꽤 재밌었다. '이런 사람도 있구나' 했다. 1979년 27세 때 창업해 30여년만에 3개 계열사, 연간 매출 1조4000억원대의 꽤나 큰 대기업을 꾸리는 '회장님'이 됐다. 자본가도 아니고 일반 직장인이. 대기업 출신도 아닌 보통의 엔지니어가. 기자가 지금껏 접해 온 대기업은 대부분 1950년 이전의 자본가가 해방 이후 만든 기업들을 모태로 지금껏 성장했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처럼 맨땅에 헤딩한 사람은 드물었다. 그런데 이렇게 1970년대 말, 젊은 나이에 창업해서 이렇게 성공한 사람이 있다니. 아니, 원래 이 시대에 이런 '젊은이'가 많았었나? 흥미로웠다.

 

이래저래 특이할 것 없는 젊은 시절 이력이다. 우리랑 비슷하다. 보통의 가정에서 태어나 경희대 기계공학과 입학, 1970년대 대학 시절 시위 참여, 학생회장 도전에 실패, 그렇게 취직 잘된다는 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도 결핵을 앓느라 시기를 놓쳐 대기업 대신 중견기업 '센츄리'에 입사. 지금 보통의 대학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감정이입 된다.

 

여기서부터 '미래의 회장님'의 대담성이 돋보인다. 중소 에어컨 회사에서 일벌레로 일하다보니 '열교환기'라는게 사업성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열교환기에 필요한 핀튜브를 만들면 돈이 되리라 생각했다. 집을 팔았다. 6명 직원의 '삼영기계공업사(현 S&TC)'를 차렸다. 요샛말로 '벤처 정신'이다. 벤처라고는 해도 엄청난 투자였다. 17평짜리 아파트 한채 판게 400만원인데 미국산 핀튜브 기계가 6000만원이었다고 한다. 아파트 15채 가격에 인생을 베팅한 거다. 27세에. 어휴. 나라면 아무리 사업성이 있다고 생각해도 그렇게 쉽게 결정 못한다. 대출이자가 얼마나 됐을까.

 

제조업이지만 벤처 정신으로 무장했다. 땅장사는 안 했다. 공장은 외주, 기술 하나만 믿고 갔다. 이 책에선 '엔지니어의 기업가 정신'이란다. 국내에선 사실상 국산화 독점, 고속성장시대다보니 빵빵 터졌다. 80~90년대 승승장구했다. 물론 그냥 승승장구한 건 아니다. 지뢰밭 투성이. 부도를 낸 고객사도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핀튜브 기계가 화재로 불타기도 했다. 매출의 60%이던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이 갑자기 거래 중단을 선언하기도 했다.

 

그런데 기업가한테는 늘 위기가 기회인가 보다. 위기 때마다 회사를 업그레이드했다. 핀튜브가 불나서 망가지자 그걸 무작정 분해했다. 청계시장 부품을 뒤져 다시 조립했다. 완벽하진 않지만 고쳤다. 제대로 된 도면도 없이. 한번 고쳐보니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들었다. 만들었다. 차츰 기술이 늘었다. 그럴 듯했다. 직접 만든 기계로 생산량을 계속 늘렸다. 한국중공업이 거래중단을 선언하자 무작정 해외로 나섰다. 해외 수출이 시작됐다. 때마침 IMF 외환위기가 터졌다. 내수기업은 연쇄부도였지만, S&TC는 달러 차익을 엄청나게 남겼다. 위기가 없었다면 이런 기회는 없었을 터. 물론 기본적으로 '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나만의 기술 + 불굴의 의지'다.

 

몇차례 위기를 기회로 삼다보니 이제 스스로 위기를 자초하기 시작했다. 중견 부품기업으로 잘 나가던 2003년, 통일중공업(현 S&T중공업)을 인수한다. 기억은 안나지만 첨예한 노사갈등으로 이미 갈 데까지 갔던 회사랜다. 그런데 때론 싸우고 때론 타협하며 결국 회사를 살려냈다. 좀 정상화 될 만하니 2006년엔 자동차 부품사인 대우정밀(현 S&T모티브)도 인수했다. 또 노조와 싸워야 했다. 그 동안 회장이 단식도 했다. 강성노조에 집단 린치를 당하기도 했다. 그러고도 또 노조를 찾아가서 대화했다. 지금 이들 회사는 여지껏 한 차례의 구조조정도 없이 건재하다.

 

물론 이 책에 나와있지 않은 '팩트'도 있다. 2007년 인수한 효성기계공업(현 S&T모터스)는 적자 끝에 이달 코라오홀딩스란 회사에 매각이 확정됐다. 실패 사례다. 이 책이 쓰여진 2012년 당시에도 실적이 어려웠다고 하는데 책에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 그래도 S&T그룹 전체적으로 봤을 땐 여전히 성공적이지만.

 

이 책을 쓴 이유는 뭘까. 최평규 회장. 27세 때 창업해서 이 책을 쓴 2012년엔 60세가 됐다. 33년 개인사다. 명예 때문일까? 주가를 높이기 위해서일까? 단순히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랬다면 의미가 퇴색했을 터, 독자인 내 흥미도 반감했을 터. 아마도 뭇 대학에서 강연하듯 이 책을 통해 무언가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것 같다. 경영자에, 대기업에, 노조에, 언론에 거침없이 쓴소리 한다. 머니 게임 M&A를 일삼는 재벌과, 직원을 돈으로 보고 구조조정을 일삼는 무책임한 경영자를 비판한다. 본인에게 'M&A의 귀재'란 쓸데없는 별명을 붙여주는 언론을 점잖게 타이른다.

 

어느 정도 미화됐을 순 있다. 그래도 억지스럽지 않다. 구태여 자서전 형태를 고집하지 않아서 더 좋다. 이런저런 질문에 대한 답변을 구술체로 풀어낸 형식이다. 자연스럽다. 가끔 질문자가 극성스럽게 회장님 자랑, 우리 회사 자랑을 하지만 회장님의 답변은 사뭇 질박하다. (그러고보니 이 질문은 누가 했을까. 공격적인 질문이 없는 걸 보니 최소한 기자는 아니다ㅋㅋ) 여튼 재밌다. 스토리가 좋다. 최소한 조금 성공했다고, 명예 좀 얻겠다고 출판사랑 손잡고 내는 상투적인 자서전과는 다르다. 나, 지금의 기자 일은 충분히 재밌지만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한 내게, 긍정적 에너지를 준다. 까짓거 될 것이란 확신 있으면, 기술력 갖추면, 될 때까지 열심히 해 보는 거다.

 


신고
Posted by 김형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