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2013.11.18 02:32

이영우 피아노 독주회 '초심'. 2013년 11월 16일 저녁 7시~8시 반. 예술의 전당 리사이틀홀.

 

친구의 권유로 공연을 보러 갔습니다. 솔직히 누구의 어떤 공연을 보겠다는 생각은 없었죠. 그저 오랜만의 클래식 공연. 그리고 거기서 피아니스트 이영우를 만났습니다. 남자인 줄 알았는데 여자 분이시더군요. 즐거운 경험이었기에 간단히 후기 남깁니다.

 

한 시간 반의 공연은 한 편의 공포영화를 보는 듯했습니다. 1부 <새로운 소리를 찾아서> 3개의 곡은 온갖 불협화음으로 긴장감을 이어갔습니다. 실제로 공포영화에 어울릴 법한 사운드였습니다. 단 한번도 편안한 화음이 없었죠. 그러나 2부 <초심>은 때론 비장하게 따론 서정적으로 아름다운 화음을 들려주며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달랬습니다. 중반부까지 두려움에 떨게 만들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웰 메이드 공포영화 그 자체였습니다.

 

1부 첫 곡부터 다시 볼까요. 조나단 하비의 '메시앙의 무덤'이라는 피아노 곡이었습니다. 무대인사가 끝나고 조명이 한 번 꺼졌다 켜진 후 이어지는 불협화음. 게다가 알 수 없이 울려퍼지는 일그러진 전자 피아노 음. 묘한 조화. 공포스러웠습니다.

 

이영우는 첫 곡이 끝난 후 간단한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워낙 실험적이었기에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는 그의 말. 능숙한 말솜씨는 아니었지만 의미는 충분히 전달됐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불협스러운 감정을 갖고 있다. 그게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저 또한 불쾌하고 불협한 글에 빠져들곤 하니까요.

 

참고로 전자음은 크리마(CREAMA)라는 팀이 맡았습니다. 외국 분. 전자-어쿠스틱 뮤직 앤 오디오 연구소의 약자라네요.

 

이영우는 여성답지 않은 당당한 체구에 강력한 힘을 보여줬습니다. 연주에 에너지가 넘쳤습니다. 서울예고-서울대 음대-독일 베를린 예술대학. 분명 프로필은 엘리트 코스를 밟은 교수님인데 거친, 밑바닥의 에너지가 느껴진 건 저만의 생각이었을까요. 남다른 면이 있었습니다.

 

1부 두 번째 곡으로 가면 그의 독특한 선곡이 더 두드려졌습니다. 죄르지 쿠르탁이란 작곡가의 유희란 곡 일부를 들려줬습니다. 어린아이가 피아노로 장난치는 걸 모티브로 지은 곡이라고 했습니다. 진짜 주먹과 팔꿈치를 이용한 파격적인 주법이 등장했죠. 이것도 정확히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친다는 악보가 존재할까요. 악보는 열심히 넘기시던데. 피아노를 타악기처럼 다룬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선율보단 리듬감이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묘하게 신났습니다. 제가 10년 동안 드럼을 쳤기 때문일까요. 물론 역시 불협이었습니다.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면 이뤘지만.

 

1부 마지막은 피에르 조드로브스키의 '흰색의 시리즈'란 곡이었습니다. 역시 전자음과 조화를 이룬 곡. 가장 괴기스러웠습니다. '흰색'을 연상했는데 하필 이날 춥기도 해서 황량한 눈밭이 떠오르더군요. 한국 초연이라고 하던데. 연주자가 외국의 작곡가에 곡을 부탁하고, 작곡가가 한국 초연을 기뻐하며 곡을 주는 모습이 떠올라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곡은 괴기스럽기 짝이 없고.

 

전 1부 40여 분 공연 동안 줄곧 불안했습니다. 10분여 휴식 기간에도 이 불안함이 가시지 않았죠. 이대로 집에 갔다면 집에서도 내내 그랬을겁니다. 그러나 큰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프로그램 표에는 분명 2부에 브람스의 소나타가 연주될 것이었거든요. '소나타 올림 바 단조, 작품번호 2'. 브람스를 잘 알진 못하지만, 분명 전통 클래식이었겠죠. 소나타라면 분명 서정적인 곡일 테고요. 역시 그랬습니다.

 

피아니스트 이영우는 2부가 되자 더 여성스러운 원피스로 갈아입고 등장했습니다. 슈타인웨이 피아노도 좀 더 뒤편으로 옮겨졌죠. 악보? 그런 거 없었습니다. 이영우에게 매우 편안한 곡임이 틀림없었습니다. 제게도 그 편안한 감정이 전해졌습니다.

 

2부 시작 직전. 작은 해프닝도 긴장을 풀어주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어떤 관객, 아저씨의 전화 벨이 울렸습니다. 바로 끊었음 모르는데 그 아저씨는 미련하게 그걸 들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이 전화벨은 계속 울렸죠. 사람들은 웃었습니다. 이영우도 미소지었습니다. 제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1부 시작 때 그랬다면 어땠을까요. 짜증 혹은 불안함이 더해졌을 것 같습니다. 1부의 긴장감은 그만큼 컸습니다.

 

연주도 편안했습니다. 절제된 1부 연주와 달리 2부 연주는 연주자의 실력을 한껏 뽐내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편안했습니다. 연주자 스스로 긴장감을 줄이고 마음껏 즐기는 느낌이었습니다. 아 정말 부러운 실력. 쇼팽은 곧잘 들어 대부분 알고 있는데 브람스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들어본 듯 익숙한 주제 멜로디가 몇 차례나 나왔습니다. 전 그 흥에 발도 구르고 머리도 끄덕였답니다. 로큰롤이었다면 일어나서 춤 추고 싶었을 정도로 흥에 겨웠습니다. 말씀드렸듯 이영우의 연주는 여성 피아니스트 이상의 힘을 가졌습니다. 이영우도 흥에 겨운 나머지 춤을 추는 듯 느껴졌습니다.

 

우연하게도 이런 인상적인 공연을 볼 수 있게 돼 행운이었습니다. 가끔 클래식 공연을 찾아다니는 수고스러움이 결코 헛되지 않군요. 이영우는 아마 내년 이맘때 다시 독주회를 연다고 합니다. 일부러 공연을 찾아다니는 수고를 하기에는 일상이 너무 고되지만, 내년 다시 추워질 때쯤, 이영우라는 피아니스트의 독주회가 열리지는 않나 찾아보게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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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