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이야기2013.07.22 11:58

그제 '희망버스'를 탄 약 3000명이 현대차 울산 공장에서 집회를 가졌습니다. 오랜만에 죽창 같은 게 등장했고, 경찰도 물대포·소화기로 맞섰습니다. 집회가 격해졌나 봅니다. 공장 진입 철조망이 뜯기고, 대치하는 과정에서 수십여 명이 다쳤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과연 이걸 어떻게 봐야 할까요.

 

◇"비정규직 정규직으로 전환하라"

 

배경부터 살펴보죠. 발단은 2012년 2월 현대차 사내하청 최병승 씨의 승소입니다. 사내하청 근로자(현대차 협력사 소속)도 오랜 기간 정규직과 사실상 같은 일을 한다면 사실상 현대차 직원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이 판결까지 약 6년 걸렸습니다. 워낙 법적으로 어려운 부분이어서 1~3심까지 간 후 대법원이 다시 내려보내고 올라오는 우여곡절이 있었죠.

 

의미있는 결과였죠. 대기업이 낙찰받고, 실제 생산은 2~4차 하청사가 하는 불합리한 사회 구조에 대한 반란. 국내 최대 노조인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이에 비정규직의 불법성을 대법원이 인정한 결과라며 모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회사 입장에선 받아들일 수 없었죠. 당연합니다. 사내하청이라도 어디까지나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거든요.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한 공장 업무와 단순 업무를 모두 동일하게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더욱이 법률적으로만 따지면 최병승 씨 개인의 승소라면 최병승 씨만 복직시키면 될 일이지, 다른 사람은 해당사항 없거든요. 승소 전례가 있으니 개별 소송을 걸면 될 문제거든요. 물론 1만3000여 비정규직이 일제히 현대차에 소송을 거는 일은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사측도 양보합니다. 승소한 최병승 씨를 복직시킨 건 당연한 일이지만, 최병승 씨와 비슷하게 정규직과 동일한 생산라인에서 비슷한 일을 하는 사내하청 근로자를 6000여 명으로 추산하고 이를 일부씩 순차적으로 정규직 전환하겠다는 방안을 내놨습니다.

 

금속노조는 이를 거부했습니다. '정몽구 회장의 사과, 전원 정규직 전환.' 최병승 씨는 울산 공장 내 철탑에 올라 농성합니다. 그게 아마 지난해 10월부터니까 벌써 9개월 째네요.

 

<현대차 사내하청 놓고 법률 공방 '2라운드'> 2012년 12월 13일.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http://media.daum.net/economic/industry/newsview?newsid=20121213163105183

 

◇정규직보다 복잡한 비정규직 문제

 

현실적으로 사내하청 직원은 현대차 소속 직원이 아닙니다. 사내하청 회사 직원입니다. 그런데 최병승 씨는 '사실상' 현대차 직원 판결이 났습니다. 여기서부터 헷갈립니다. 현대차에 있어 비정규직 노조는 아직 실체가 없습니다. 어디까지가 사내하청이고 비정규직인지 모호합니다. 게다가 정규직 노조도 있습니다. 사측은 정규직 노조와의 협의 없이 비정규직 문제를 단독으로 처리할 수 없습니다.

 

현대차 사측, 정규직 노조, 사내하청 기업 사측,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 등 최소 4개의 이해관계가 다른 집단이 존재하는 셈입니다. 물론 정규직·비정규직 노조 모두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지만 서로의 입장은 다릅니다. 지난해 말 이들 이해집단간 협의가 올초 중단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정규직 노조의 미지근한 태도에 비정규직 노조가 공동 협의 중단을 선언했죠. 복잡합니다.

 

파업 양상도 다릅니다. 4만여 정규직 노조가 파업하면 현대차 국내 생산 라인은 완전히 멈춰섭니다. 사측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습니다. 그러나 1000여명 수준인 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가입 노조원이 파업한들 사측은 생산에 대단한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비정규직은 공장 점거라는 무리수를 둘 수 밖에 없죠. 우리의 파업이 사측에 타격을 주지 않으면 파업의 의미는 없어집니다. 더 거칠어지고, 매번 다치는 사람이 생기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현대차 사내하청 노조 10일 파업.. 몸싸움에 수십명 부상> 2013년 7월 10일.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http://media.daum.net/economic/autos/newsview?newsid=20130710195906562

 

다행히 올 6월 초 이들 이해단체가 다시 머리를 맞댔죠. 둘다 꽤나 전향적으로 대응하려는 모양새를 보였습니다. 물론 이후 금속노조의 연이은 파업과 '희망버스'로 평화적인 해결책은 요원해 보이지만..

 

<현대차 비정규직 노사협의 재개.. '실마리 풀리나'>

http://media.daum.net/economic/autos/newsview?newsid=20130609124605619

 

◇현대차는 상징일 뿐, 정치의 문제다

 

현대차 사측은 최병승 씨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했습니다. 회사로서 정규 인력의 증가는 중장기적으로 큰 부담일 수 있지만, 이런 갈등에 대한 당장의 부담이 워낙 크니까요. 그런데 왜 금속노조는 이를 수용하지 않고 다소 무리한 요구를 계속하며 갈등을 빚는 걸까요.

 

생각컨데 현대차는 상징성을 띌 뿐 '비정규직 문제'는 명백한 정치적 사안이기 때문인 듯 합니다. 여기서 최대한의 요구를 끌어내야 나머지 모든 비정규직에 힘을 실어줄 수 있습니다. 여기서 확실한 비정규직의 '승리'를 이끌지 못하고 애매하게 타협하면 다른 곳에서 말빨이 안 먹힐 수 있습니다. 노동계의 정치적 동력도 약해집니다. 쉽게 타협할 수 없는 문제죠.

 

사실 현대차의 노동운동은 단일 노조로는 최대 규모인 만큼 이들의 모든 결정은 상징성을 지닙니다. 여기서 통과된 안건은 다른 많은 기업들의 노조로 확산됩니다. 새벽 근무 폐지가 대표적이죠. 여기서 하니까 기아차도 한국GM(내년 1월 목표로 추진중)도 하잖아요. 이미 충분한 복지 혜택을 누리는 이들 노조가 '귀족 노조'라는 욕을 먹어가면서도 결코 타협하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들이 누리는 복지가 우리에게 직접적인 혜택이 있는 건 아니지만, 간접적으로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죠.

 

비정규직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차 입장에선 모처럼 대화를 시작해 놓고 다시 무력 시위에 나서는 금속노조가 밉겠죠. 하지만 금속노조 입장에선 결코 타협할 수 없습니다. 단순히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게 아니라 그 동안의 불법성을 인정하고, 시정하라는 거죠. 결과적으론 같은 얘기지만 명분이 다르죠. 

 

금속노조의 최근 3대 과제가 ▲2009년 쌍용차 구조조정 문제 ▲현대차 비정규직 ▲2010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였다고 합니다. 한진중공업은 정리해고를 철회했고, 쌍용차는 희망퇴직자 455명이 최근 복직하는 등 일부 성과가 있었습니다. 물론 희망퇴직자·정리해고자는 아직 남아 있고 노동계의 '회계조작 의혹 제기는 이어지고 있지만. 남은 건 현대차 비정규직입니다. 여기서 최대한의 성과를 내야 합니다. 그리고 금속노조는 한진중공업 문제를 이슈화하고 해결하는 데 공을 세웠던 '고공농성' '희망버스'를 앞세워 현대차와 경영계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희망버스, 진정한 '희망 버스' 되야

 

우려도 있습니다. 희망버스가 아니라 절망버스, 폭력버스라고 비아냥대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해당 지역 시민들이 불편하다며 민원을 넣습니다. 노동 운동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반응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국정원의 정치 개입 의혹에 대해선 분개하는 시민들이 현대차 정규·비정규직은 귀족노조라며 비난합니다.

 

<희망버스 타고가 술판.. '난장버스'로> 2013년 7월 21일. 세계일보 이보람 기자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30721200319403

 

<'폭력으로 얼룩' 현대차 희망버스 해산(종합)> 2013년 7월 21일. 연합통신 장영은 허광무 김근주 기자

 http://media.daum.net/economic/industry/newsview?newsid=20130721111206018

 

물론 보수의 언론 장악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하지만 꼭 그런 것 같진 않습니다. 세계일보가 보수거나 친자본적인 언론은 아니지 않나요. 보도가 악의적이었다 치더라도 불필요하게 보수에 역공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분명 문제입니다.

 

<희망버스 보도, '정몽구'는 없고 '폭력'만 있다> 2013년 7월 21일. 미디어스 곽상아 기자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5804

 

<현대차 희망버스 동행기 "연대 통한 비정규직 철폐 희망 다시 갖게 됐다"> 2013년 7월 21일 경향신문 박철응 기자

http://media.daum.net/society/welfare/newsview?newsid=20130721230405908

 

다음 기사 댓글을 한번 보면 달라진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댓글이 모든 여론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음 기사 댓글은 통상적으로 진보 측 입장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댓글 대부분은 이번 희망버스에 대해 회의적입니다. 취업난, 제대로 된 직장이 없어진 가운데, 현대차 노조가 갖던 '상징성'이 이제 옛 말이 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현대차 노조의 자녀 취업 특혜 등에 따른 세습 논란 등이 이들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부추겼죠. 사람들이 이들이 강력한 이권 집단이 돼 버린 것처럼 느끼는 겁니다. 더욱이 국내 대부분의 시민은 현대·기아차를 타고, 대부분 갈수록 비싸지는 자동차 가격에 불만을 갖고 있거든요. 결국 이 불만이 귀족 노조로 이어지는 형국입니다.

 

당장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진 모릅니다. 이미 사측은 상당 부분 양보를 한 상황이니 노동계가 결단만 하면 곧 전향적인 결론이 나오겠죠. 하지만 노동 운동에 대한 이런 불편한 시각은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습니다. 노동자의 지지를 먹고 사는 노동계가 노동자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보수는 많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전에 비해 점점 세련되지고 있습니다. 개개인의 멍청한 실수를 막지는 못하지만, 80년대 때처럼 시위자를 무력으로 찍어누르지 않습니다. 그럴수록 죽창을 든 진보는 외곬수적이고, 이슈 지향적이고, 그로 인해 정당성이 퇴색해 보입니다.

 

진보도 변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더 세련되게. 보수보다 더 치밀하게. 힘 대 힘으로 붙던 1980년대와는 시대가 다릅니다. 이제 절대적인 선과 악의 대결구도는 없습니다. 죽창이 아니라 이해관계와 정당성, 설득력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촛불 문화제'는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건 어디로 사라졌나요.

 

저도 제가 다니는 회사의 노조원이고, 그 혜택을 보고 있습니다. 노조가 없던 회사에서 있던 회사로 이직하며 그 차이, 그 필요성을 절실히 느낍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정당성을 기반으로 한 노조원의 지지를 담보로 했을 때만 노조의 존재 의미를 가집니다.


일부 대기업 노조는 이권단체처럼 비춰지고, 노동계가 대기업 노조에 매달려 이를 정치적으로 이슈화하려 하는 현재의 상황이 불안해 보입니다. 더욱이 글로벌화가 가속화하면서 국내의 산업 기반은 점차 약해지고 있습니다. 일본의 20년 장기 불황이 언제 우리에게 덮칠지 모릅니다. 1960년대 세계 자동차의 메카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디트로이트 시가 파산하듯 언제 국내 산업 기반이 무너져 위기를 겪을지 알 수 없습니다.

 

현대차라는 개별 기업의 노조원이 아닌 진정 국가 전체의 노동자가 오래도록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해 볼 시점 아닐까요. 일부 노동자가 아닌, 모든 국민(노동자)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노동 운동으로 변신해야 할 시점 아닐까요.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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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