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2013.01.03 15:50

-삼총사 1~2권. 1844. 알렉상드로 뒤마 지음. 박수현 옮김. 일신서적출판사.

 

삼총사 하면 어떤 생각이 들까. 어린 시절 본 동화나 만화? 그 때 분명 다르타냥은 얼굴강아지였다. 포르토스는 돼지, 나머지는 뭐였더라. 아니면 세 명의 총사. 아토스, 프로토스, 아라미스 그리고 주인공 다르타냥의 우정? 또 아니면 영국 버킹검 공작과 왕비 안느의 사랑? 다르타냥과 왕비의 시녀 보나슈의 사랑? 혹은 루이 13세와 리슐리외 추기경의 궁중 암투? 마녀와도 같은 리슐리외의 심복 밀레이디?

 

만화 삼총사

맞다. 하지만 반만 맞았다. 멋스럽게 포장했으나 본질은 그게 아니다. 그저 건달 이야기다. 그것도 아주 마초적인, 사람 목숨 따위는 깃털만큼 가볍게 여기는. 여자는 성적 자기만족 이상, 이하도 아닌. 요컨데 통속소설의 대가 알렉상드로 뒤마의 솔직한 로망이 담긴 통속소설 중의 통속소설이다.


시대적 배경 자체가 그렇다. 뒤마는 1800년대에 산 작가다. 그때만 해도 살인이나 정조 따위의 거추장스러운 ‘제약’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배경을 1600년대로 옮겼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 땐 그런 자질구레한 제약 따위는 없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유부녀와의 바람도 아름다운 일이고, 서로를 죽이는 결투 또한 공공연한 일이었다. ‘답답했던’ 19세기를 벗어나 17세기의 건달 이야기를 통해 작가와 독자의 욕구를 한껏 분출한다는 게 삼총사를 쓴 이유며, 이 책이 ‘롱런’하는 비결일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왕을 지키는 총사대와 리슐리외를 지키는 경호대는 모두 프랑스 소속이지만 서로 싸우기 바쁘다. 연일 전쟁과도 같은 싸움이 벌어진다. 옷깃을 스쳤다는 이유로 서로를 죽이려 했던 다르타냥과 삼총사들이 친해진 것도 이 같은 대결구도 때문이다. 제3국인 영국과의 전쟁을 벌이면서도 이 둘의 건달 무리는 결코 친해지지 않는다.


또 주인공 넷 모두 죽음 따위는 두려워 않는다. 죽음보다 두려운 건 멋이 없는 거다. 출전(出戰)에 앞서 호화로운 장식을 구하려고 여기저기 돈을 구하러(사실상 강탈하러) 다니는 모습은 애처롭기보다는 호기롭다. 전쟁 때도 쪽팔리지 않기 위해 목숨을 건 내기를 하고 영웅이 된다.


더욱이 다르타냥은 야심이 있다. 시골 촌놈이 돼서 후일 총사대장(후속편인 철가면에 등장)이 되는 그는 애초부터 이런 줄타기를 잘 한다. 정치력이 있다. 총사대 편에 서지만 리슐리외와도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한다. 물론 이들 고위층의 눈에 띄기 위한 종횡무진 활약도 있다.


영화도 있었네요. 1980년대 영화라던데 주인공들이 안 멋있음ㅠ

클라이막스는 삼총사 속 여자 문제다. 문란하기가 그지없다. 여성부에서 이 책을 불온도서로 선정하지 않은 건 기적에 가깝다. 삼총사의 맡형 격인 아토스는 슬픈 과거가 있다손 치더라도 포르토스는 요즘 말로 하면 ‘호스트’다. 여자, 특히 돈 많은 유부녀를 꼬셔서 자신을 치장하고 술을 먹는데 탕진한다. 남편의 눈치 따위는 보지 않는다.


아라미스는 성직자를 꿈꾸지만, 그건 애인과 소원했을 때 뿐이다. 소원할 때마다 성직자를 꿈꾼답시고 점잖은 척 하지만 뒤로는 호박씨 다 깐다. 특히 궁중의 높은 분과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한다. (유부녀인지 아닌지는 불명확함)


야심 있는 다르타냥이 여자 문제에 있어서도 ‘1급’이다. 유부녀인 왕비의 시녀 플랑쉐를 꼬신다. 정열적인 사랑에 빠진다. 그러면서도 어둠 속에서 다른 사람을 가장해 적 중의 적인 밀레이디와 하룻밤을 갖는다. 나중에 ‘기사답지 못했다’며 미안해 하긴 하지만 뭐.. 말 뿐이다. 밀레이디가 다르타냥을 죽이려 한 가장 큰 이유는 정적이어서가 아니다. 속임수로 자신을 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밀레이디를 속이는 과정에서 밀레이디의 시녀도 농락한다. 이건 뭐.. 닥치는 대로 하고 다닌다.


그래놓고 소설 말미에 밀레이디가 전과자란 걸 속이고 아토스랑 결혼했고 그만큼 문란한 여자였다는 이유로 처형하는 모습은 마초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뿐 아니다. 영국 버킹검 공작은 정략결혼이었다고는 하지만 엄연히 남편(왕)이 있는 왕비 안느를 유혹하고 안느는 거기에 넘어간다. 얼굴 한 번 더 본다는 이유로 영불 전쟁을 일으킨다. 헐.


여자들을 닥치는 대로 꼬시고, 자고, 제 멋에 겨워 사랑 타령 하다가, 여자가 문란하면 이를 비난하는 이들, 자기중심적인 마초고 모든 걸 힘에 의존하는 건달이다. 음. 황당무계하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누군가 말한다. ‘이봐, 너도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네가 진짜 바라는 건 이런 게 아닐까? 하지 못해서 그러는 것일 뿐..’ 맞다. 얘네들 좀 멋있다. 이성이나 체면을 벗은 난 필시 이들을 동경하고 있을 것이다. 부러워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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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