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2012.11.16 01:25

-몽테크리스토 백작 1~3권. 1845년. 알렉상드로 뒤마. 박수현 번역. 일신서적출판사(1969년)

 

내가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처음 접한 건 초등학생 때, 아마도 1990년 전후였을 거다. 당시에는 '암굴왕'으로 번역돼 나왔다. 그 때 사랑이니 복수니 돈이니 얼마나 알았겠냐마나는 재밌었다.

 

'14년 동안 감옥에 갇힌 선원 에드몽 단테스가 누명을 쓰고 섬 속 감옥에 갇힌다. 이 곳에서 지식인이자 철학자인 파리아 신부를 만나고 지식을 흡수한 그는 14년만에 탈옥에 성공한다. 그리고 파리아 신부가 갇히기 전 상속받은 어마어마한 돈으로 자신을 모함한 사람들에게 한 명씩 복수한다.'

 

당시 삼총사, 톰 소오여의 모험, 명탐정 홈즈, 성웅 이순신, 로빈슨 크루소, 15소년 표류기, 소공녀, 알프스의 소녀.. 등 주옥같은 소설이 많았으나 암굴왕은 그 중에서도 웬지 기억에 남는 책이었다. 성인 통속소설이 어린이 책으로 요약됐던 만큼 이해 못하는 부분도 많은 것 같다. 20대 초반 문득 다시 3권의 전집을 샀다. 성인이 돼 다시 읽으니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도 이해 됐다.

 

그리고 얼마 전 책을 정리하던 중 이 책을 발견하고 다시 한 번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잘 때, 일할 때 빼고는 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스무 살 때와는 또 다른 감흥이 밀려왔다. 나는 내년이면 어느덧 에드몽 단

 

테스가 14년만에 탈옥하던 34살이 된다. 어렸을 땐 미처 몰랐던 미묘한 감정들도 속속 이해하게 된다.

 

이 책은 사실과 거짓을 버무린 '팩션'이다. 사실을 기반으로 한 허구의 이야기. 그리고 통속 소설이다. 실제 소설 속 샤토 딥 감옥은 존재한다. 극적으로 탈옥한 사람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보물이 묻혀 있던 몽테크리스토 섬도 마찬가지다. 물론 보물은 없었지만. 약 40년 전. 지금으로 치면 1970년대 허구의 이야기를 써서 히트를 친 대중 소설이었다. 당시 이 책의 인기는 대단했다. 극작가로 성공한 그는 이 책을 통해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다. 몽테크리스토 섬은 관광 명소가 됐다.

 

대부분 어릴 적 이 책을 읽었을 것이다. 탈옥 스토리의 고전과도 같은 책이다. 하지만 성인이 돼 다시 읽은 사람은 그보다 훨씬 적을 터. 예전에 몰랐던 새로운 사실들만 몇 가지 짚어보자.

에드몽 단테스(몽테크리스토 백작)가 누명을 쓴 것은 단테스의 약혼녀인 메르세데스를 사랑한 군인 페르낭, 단테스가 스무 살의 젊은 나이에 선장이 되는 걸 시기한 배의 회계담당 당그라르, 이를 묵인한 일수꾼 카도루스 3인이 단테스를 검찰에 신고했기 때문이다. 단테스는 아무것도 모른 채 나폴레옹 황제의 복귀를 도모하는 세력의 심부름을 하려 했다. 그리고 마르세유 검찰 빌포르는 단테스가 단순가담자란 걸 알았으면서도 아버지가 연루됐다는 걸 은폐하기 위해, 또 자신의 승진을 위해 그를 감옥에 가둔다. 서로 다른 이유지만 4명이 단테스를 샤토 딥 지하 감옥으로 끌어내린다.

 

검찰의 위세가 대단하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비슷해 보인다. 결과적으로 왕에게 나폴레옹의 '반역'을 직접 보고하게 된 빌포르 검사는 후일 무소불위 권력의 검찰총장이 된다. 또 페르낭은 국회의원, 당그라르는 파리의 은행주가 된다.

 

단테스는 감옥 안에서 평생의 은인인 파리아 신부를 만나 많은 걸 배웠고, 무엇보다 탈옥 후에도 몽테크리스토 섬에서 묻힌 엄청난 액수로 환산할 수 있는 보물을 얻게 된다. 당시 은행의 보유액의 10배 가량이다. 아마 지금 돈으로 1000조원 가량이 될 것이다. 신한은행의 총 자산이 288조원이니까. 참고로 현재 우리나라 1년 예산이 325조원 정도다. 소설에서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재산은 현대적인 은행의 효시 격인 로스차일드 일가와 비견된다. (실제 그런 표현이 나옴) 그는 이 돈을 광산이나 유럽 여러 국가의 국채 등에 분산투자해 영구적인 자산으로 바꿔 놨다. 그는 이 막대한 돈에다가 감옥에서 배운 학식과 선원다운 힘과 용기를 더해,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지니게 된다.

 

탈옥 후 10년 동안이나 어디서 뭘 하는지 소설에는 나오지 않는다. 보물을 자산화하고, 전 세계를 여행 다니며 이 부를 향유하는 가운데 틈틈히 복수를 준비한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자신을 감옥에 넣고, 자신의 사랑하던 연인을 빼앗고, 아버지를 굶어 죽어 돌아가게 만든 사람에 대한 분노는 소설의 극적 마무리를 위해 10년 미뤄진다. 몽테크리스토 백작은 어디까지나 통속소설이다.

 

그는 이후 복수를 위해 파리 사교계에 나온다. 그의 나이는 어느덧 40대 중반. 50대 전후의 배신자들은 이미 당대의 거물이 돼 있다. 24년이 지난 지금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다. 그의 옛 애인이자 약혼녀인 메르세데스를 빼고는. 그리고 사회적 지위를 빼앗고 정신적으로 되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준다.

 

스토리보다 재밌는 건 최고급만 찾는 그의 취향이다. 복수도 복수지만 구태여 사교계에 가서 거물들과 교류하며 자신의 압도적인 식도락을 뽐낸다. 아마 영화 '귀여운 여인'의 거부 리처드 기어 같은 당대의 부자의 전형은 모두 이 책을 본받아야 한다. 실제 뭇 이야기가 이 책을 모티브로 삼았을 가능성도 크다. 마초적인 백작의 성격은 초인적인 절대권력과 카리스마를 가진 헐리우드풍 영웅들과 흡사하다. 이 남자, 완벽하다.

 

1800년대 중반 유럽에도 국채, 주식투자, 은행 같은 현대적 개념의 경제 활동이 상당히 발전해 있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단위가 달라 직접 환산은 어렵지만, 소설은 금전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묘사한다.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얼마를 주고 산 말 두 필을 당그랄 남작 부인에 선물해 파리 사교계에 화제가 됐다. 당그랄 은행의 총 자산은 몇백만 에퀴였다'는 식이다. 당그라르는 결국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조종하는 주식투자로 인해 큰 돈을 잃고 파산하게 된다.

 

이는 분명 보통의 독자의 로망을 자극하는 모습이다. 아니 저자 스스로의 로망이었던 모양이다. 저자 소개를 보면 알렉상드로 뒤마 역시 촌구석에서 올라와 극작가 및 소설로 성공해 파리 사교계에 입성했고, 벌어들인 돈이 엄청났던 만큼 쓴 돈도 엄청났다. 결국 파산을 거듭, 빈곤한 말년을 맞았다.

 

여차저차 몽테크리스토 백작은 복수를 다 이뤘다. 그 후에는 어떻게 됐을까. 이 이야기는 독자의 로망에 충실하다. 자신이 페르낭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 산 노예 에데와 사랑에 빠진다. 단순한 노예가 아니다. 과거 그리스의 공주다. 이국적이면서도 너무나도 아름다운 20대 처자다. 아름다운 만큼 마음씨도 착하다. 복수하느라 지친 40대 중년의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기에는 그만이다. 아니 이미 나이가 들어 젊은 처자와의 로맨스를 이룰 수 없는 저자나 독자의 숨겨진 로망을 끌어내기에는 충분하다. 백작은 말한다. '오오- 이런 나에게도 아직 사랑의 감정이 남아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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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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