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현대자동차그룹과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매각 주관사인 외환은행을 고소했다. 이로써 현대건설 인수전은 지리멸렬한 법정 공방이 불가피하게 됐다. 각종 의혹이 난무하던 인수전이 진짜 ‘삼류 드라마’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외환은행은 이번 드라마에서 숨은 주인공 역을 맡았다. 사태를 이지경까지 몰고 간 장본인. 이 은행의 대주주인 론스타는 하나금융지주에 외환은행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현대건설 매각 이익에 대해 이미 주당 850원에 보장 받았다. 어차피 뒤처리는 외환은행의 새 주인이 된 하나금융지주나 다른 채권단의 몫. 이제 빨리 여기에 대한 결론을 내고 한국을 떠나고 싶은 마음 뿐이다. 이런 속사정이 이제 검찰 수사로 그 실체가 서서히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외환은행은 “우리는 공정하고 투명하게 매각 절차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며 시청자들의 답답함을 부추기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돈 많은 악역. 하지만 알고 보면 불쌍할 정도로 순진하다. 인수전 내내 ‘다윗과 골리앗(물론 현대차가 골리앗)’, ‘제수(동생의 부인)의 경영권을 빼앗으려는 집안 어른’ 같은 현대그룹의 공세에 무대응 했다. 아니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순진하게도 공정한 절차, 현대건설에 대한 합리적인 비전 제시가 다라고 생각했다. 채권단이 합리적인 평가를 내려 줄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분노한다. 이후 본격적인 싸움에 나섰다. 하지만 이 그룹은 악역을 맡았다. 채권단에 항의하면 ‘협박’이 되고, 각종 의혹들이 보도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물밑 작업’으로 변모한다. 재계 2위의 아이러니다. 현대차그룹의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조심스레 푸념했다. “현대차그룹이 (세간에서 말하는 것 만큼) 막강한 로비력과 정보력이 있었다면 입찰 가격을 그렇게 써 냈겠느냐”고.

현대그룹은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고 싶은 모양이다. 하지만 그 속을 알 수가 없다. 인수전 내내 비명(非命)에 가신 고(故) 정몽헌 회장을 내세운 CF로 감성을 자극했고, ‘골리앗’ 현대차그룹의 ‘욕심’을 부각시켰다.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던 날 현정은 회장은 선영을 찾아 “고인들도 기뻐할 것”이라며 감동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양해각서(MOU) 체결 이후 자금 출처에 대해 의혹들이 불거진 현재도 마찬가지다. “채권단이 현대차그룹의 협박과 압력에 굴복했다. 입찰 과정도 불공정한 상황 속에서 진행됐다. 관련 기관도 강자의 논리에 밀리고 있다”며 자신의 편이 없음을 한탄만 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프랑스 나티시스 은행에서 빌린 1조2000억원 등 자금 출저에 대해서는 속 시원한 답은 해결해 주지 않는다. 이 것만 해소되면 심지어 ‘적’마저도 자기 편으로 돌릴 수 있는데 말이다. 모든 의혹을 풀 ‘비밀의 키’는 이 여주인공 만이 갖고 있다.

이 드라마는 이제 종반부로 접어들며 점점 복잡하게 됐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 제 3자 입장에서 보면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드라마는 막대한 ‘제작비’가 든다. 현대건설 매각이 미뤄지며 현대그룹과 현대차그룹은 경영 계획을 수립하는 데 차질을 빚고 있다. 현대건설도 새 사업 추진이 애매한 상태. 대우조선해양, 하이닉스 등 다른 매물도 장기화 될 전망이다. 채권단은 입찰 기업을 보다 엄중히 심사했어야 했다. 또 금융 당국은 이를 철저히 감독해 시장에 혼란이 없도록 했다. 때늦은 아쉬움이 남는다.

Posted by 김형욱